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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24. 2023

나를 위해 태어나준 너에게 보내는 선물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벽 너머로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이지 만취한 삼촌이 있는 거 같다. 점심 산책을 다녀온 뒤 그는 푹신한 자신만의 침대에서 늘 이렇게 단잠을 청한다. 그러다 3시쯤이 되면 나에게로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장난감을 가져와 게임을 시작한다. 집안 곳곳에 숨겨진 장난감 찾기. 그가 장난감을 찾아오고. 때로는 숨어있는 누나를 찾아보고. 우리는 그렇게 늦은 오후를 보낸다. 그는 ‘까꿍’놀이도 좋아한다. 그 앞에 앉아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며 ‘누나 없네’를 속삭인다. 얼굴을 덮은 손이 축축해질 만큼 그가 핥아대면 나는 손바닥을 펼치며 ‘누나 있네!’를 외친다. 그러면 그는 반갑다며 사정없이 골반을 흔들어댄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카페도 가고, 회사도 갔다. 때로는 공원을 산책하고 멀리 제주도로 여행도 갔다.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나만의 보디가드처럼 그는 24시간 내 곁에 붙어 있었고 덕분에 난 빛을 잃어가는 나날 속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꼬리로 쿠션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좋은 꿈을 꾸는 모양이다. 그의 꿈속에 내가 나오고 있을까. 같이 즐겁게 산책하는 꿈이었음 좋겠다. 꿈속에서도 내 사랑을 듬뿍 받았음 좋겠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나는 저 사랑스러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인연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도담이가 어느새 8살이 되어버렸다. 7년이란 세월이 이렇게도 짧았나. 내년이면 그는 은퇴를 하고 내 곁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마지막 날이 될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은퇴견을 돌봐주시는 봉사자 품에서 담뿍 사랑받겠지만 역시나 슬픈 감정을 지울 순 없다. 그의 은퇴를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하는 두 눈의 부재가 원망스러워진다.

 ‘사랑해’

 수천 번은 그에게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말로는 부족해서 그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글로 남긴다. 설령 떨어져 있더라도 내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누군가가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욕심이 더 있다.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 ‘안내견의 삶’을 다시 바라봐 주는 것. 더 이상 다른 안내견과 파트너들이 ‘고생한다’, ‘불쌍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그가 수 백 번은 들었던 그 가시 돋친 말들이 솜사탕처럼 녹아버렸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많이 울 것 같다. 장애인이 되고 늘 함께였기에 그의 향기가 밴 커다란 쿠션들이 텅 비어있을 생각을 하면 왈칵 눈물이 난다. 내가 그의 빈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는 내 첫 번째 반려견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안내견을 받는다 해도 나는 결코 그를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문자라는 형태로 그와의 추억을 새겨둔다. 그동안 끄적인 추억 노트를 모아 정리하려 한다. 나의 친애하는 안내견 도담이에게 이 글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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