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누군가의 인생에 가격표를 붙이다

자신에게 환멸감을 느낀 날

by 하얀솜사탕

"글세 우리 사장님 최악이야."

소꿉친구가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얼마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잖아. 근데 얼굴 한번 안 비추고 부조도 안 하는 거 있지."

친구는 유년시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아빠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사회가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있나.

"너무했다 그건... 아무리 조부모라고 해도 그렇지."

"근데 더 최악인 건 뭔지 알아?"

"뭔데?"

"할아버지 막 돌아가셨을 때 사장님한테 알리려고 전화했는데 그때 사장 하는 말이..."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였다.

"아 그래? 할아버님 명복을 빌어. 가족 분들이 많이 힘드시겠네. 그런데 할아버지인데도 너가 꼭 빈소를 지켜야 돼? 돌아가실 분 더 계시진 않고?"

최악이다. 인간으로서 최악이다.


"그래도 결혼식은 해야 돼."

"왜요? 돈 많이 들어가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남는 장사야. 축의금 받으면 결혼식비 내고도 남아. 뿌렸으니까 거둬야지."

평범한 '~한다면' 걸즈토크에 친한 언니가 진지해졌다. 난 장사할 맘은 없는데... 결혼식은 장사였나보다.


"이번에 해요?"

"하지."

"얼마나 할 거예요?"

횡단보도에서 어느 직장인들을 만났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인간은 인간에게 가격표를 붙인다. 인생에 한 두 번 올까말까한 사건에 조의금이나 축의금으로. 상대방의 인생배경과 사연, 사건의 무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상대방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둔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지, 시작될 인생의 2막에 얼마나 설레할지, 그 사건에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그다지 관심 없다. 쭈뼛쭈뼛 주위 눈치를 보다가 이 사람은 얼마, 저 사람은 얼마 가격표를 붙인다. 그저 내 지갑사정이 걱정된다. 그리고 남들이 얼마나 했나, 얼마나 받았나 그건 또 궁금하다. 그렇게 진심어린 마음보단 껍데기뿐인 성의로 돈을 꺼낸다. 방명록에 이름 남기는 걸로 모자란지 봉투에 이름 석자도 또박또박 적어서. 나중에 억울할까봐 '거둘 일'이 생기면 재빠르계 계좌번호를 넣는 사람도 있다. 슬프다. 다 껍데기뿐이다. 무엇에 그렇게 눈치를 보고 억울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애매하네."

테디베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가요?"

"아니, 회사에 아는 사람이 가족상을 당했는데 부조를 해야하나... 애매해서."

"친한 사람이야?"

"친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업무상 자주 마주쳐요?"

"아니, 그건 아닌데 예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이야. 지금은 같은 지부에서 일하지도 않고."

"그래? 그럼 굳이 안 해도 되지 않나? 할 거면 10만원은 과한 거 같은데."

등골이 섬뜩해졌다. 나도 사람 목숨에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망자가 되었다고 서스럼 없이 물건 취급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품고 살아간 고귀한 생명의 가치를 돈 따위로 감히.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먹이를 이고 가는 개미의 고통도 알던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환멸스럽다. 결국 나도 껍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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