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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r 30. 2023

감사 한 그릇

참치 한 조각이 알려준 깨달음

 봄인지 여름인지   없는 어정쩡한 더위가 찾아왔다. 정수기 물조차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오면  거의 음식물을 입에 넣지 않는다. 살이 빠지고 기운은 없고. 그런데 뇌든 심장이든 휴업할  없는 노릇이기에 에너지가 필요했다. 다행히  몸뚱이는 나의 암묵적 단식을 지켜만 보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작은 병사들을 혀에게 보냈다.

 “상큼한 것! 달콤한 것을 달라! 이대로 굶을쏘냐!”

 혓바닥 미뢰들이 돌기를 세우며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아 맛있겠다....’

 나는 그들이 띄운 플래카드 그림을 쫓아 참치집으로 갔다.

 “여기 참치 회덮밥 주세요.”

 하얀 쌀밥 위에 채소 그늘막 펼치고 다소곳이 누워 있는 참치 회. 해변가 머드축제처럼 붉은 양념이 범벅이 되도록 신나게 즐기는 초장 파티. 매콤달콤상콤! 음식이 나올 때를 기다리며 미뢰들이 한껏 부푼 촉촉한 얼굴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회덮밥 나왔습니다.”

 신나게 비벼 한 입 꿀꺽. 이게 천국이다. 산과 바다가 모두 숟가락 하나에 담겨 있다. 최고의 바캉스다. 한 입, 한 입. 숟가락질을 하는데 주르륵 회 한 점이 미끄러 떨어졌다. 나는 다시 그걸 떠올렸다. 하지만 또 주르륵.

 ‘메롱’

 몇 조각 없는 회가 자꾸만 내 숟가락을 요리조리 피했다. 분명 죽었는데 그릇에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잘도 도망갔다.

 “있지. 이 참치는 자기가 풀을 만날 줄 알았을까? 인간한테 먹힐 거라고 생각했을까?”

 문득 생각이 스쳤다.

 “풀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지 않았을까? 자기가 죽을 줄도 몰랐을 텐데.”

 테디베어가 말했다.

 “이 참치는 언제 잡힌 걸까?”

 “글쎄... 원양어선으로 잡으니까 못해도 몇 개월 되지 않았을까? 냉동으로 오니까.”

 몇 개월 전까지 물고기들을 먹으며 살았던 참치를 몇 개월 전에 잡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참치를 얼리고 손질하고 납품하고... 이 참치가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생명이 필요했을까. 새삼스럽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상추, 깻잎, 양배추, 입안에 씹히는 채소들까지 신경 쓰였다.

 “이 채소들도 키우는 데 이것저것 많이 필요하겠지?”

 “하우스로 키우면 기름도 필요하고 수확하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많이 필요하지. 왜?”

 “그냥.. 갑자기 경건해지네.”

 보일러를 돌릴 기름을 뽑는 데 필요한 사람, 그 환경에 있던 동식물들의 양보, 유통을 담당하는 사람... 쌀도 초고추장도 김가루도 다 사람과 다른 생명들을 거친 완성품이었다. 만약 나 혼자만의 힘으로 참치 회덮밥을 만든다면...

 참치는 언제 키우고 어떻게 잡고 손질하지? 벼는 어느 세월에 키우나. 초고추장은 고추장부터 만들어야 하는 데 얼마나 기다리지? 김가루는 수확해서 펴고 말리고 가루를 내는 데 며칠 걸리지?

 “으아.. 나 이거 못 만들어 먹겠다...”

 “하하하, 그냥 마트에서 사서 하면 집에서 충분히 하지. 왜 못합니까.”

 테디베어는 마트에 있는데 나는 원양어선 위에 있었다. 잠깐 원양어선은 또 언제 만든다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밑도 끝도 없는 추적에 한숨만 나왔다. 나는 머리를 식힐 겸 물 한 모금을 한 뒤 다시 덮밥 그릇을 잡았다.

 재료들: “우리 여기 있어!”

 사람들: “우리가 없으면 쫄쫄 굶을걸?”

 그들이 팔짱을 끼고 내게 말하고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원양어선에 탈 자신도, 농사지을 자신도 하루 종일 트럭을 운전할 자신도 없다. 내 생명을 기꺼이 내어 다른 사람 배불려 줄 자신도 당연 없다.

 ‘감사합니다.’

 식사를 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다. 모든 생명들의 희생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어주시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나는 밥을 남기지 않는다. 먹을 때도 가급적이면 최대한 천천히 먹고 있다. 몇 년, 몇 달, 며칠을 거쳐 내 앞에 오는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리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에이, 그 사람들은 대신 돈을 벌잖아. 우리가 팔아주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면 당연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를 벌든, 몇 시간을 일하든 우선 내가 그 일을 할 줄 모르고 해낼 자신이 없다면 모든 일들이 숭고한 노동이 아닌가 싶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 몸뚱이가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준 모든 생명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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