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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n 14. 2023

잘못된 장래희망

장래희망에 대한 고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꼭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있었다. 의사, 변호사, 과학자 등등.. 당시 유행하는 직업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학생 나름대로의 개성에 맞게 빈칸을 채우곤 했다. 내 장래희망은 동물원 사육사에서 화가, 그다음은 미술 교사였는데 이렇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볼 수 없는 아기 호랑이를 강아지처럼 길들이고 원숭이랑 장난도 치는 모습이 정글북 속 모글리 같아서 동경 그 자체였다.

 “나도 코끼리 등 긁어주고 싶어. 코끼리는 뚱뚱해서 저기 가운데 등에 코가 안 닿잖아. 나 동물원 사육사 할래.”

 텔레비전에서 사육사가 코끼리 등에 물을 뿌려주는 장면을 보며 나는 외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사육사는 여자가 하는 직업이 아니야.”

 “왜?”

 “힘이 얼마나 필요한데. 그리고 위험하잖니.”

 당시엔 요즘보다 성별에 따른 직업 구분이 훨씬 더 심했다. 지금도 여성 비율이 높은 직업, 남성 비율이 높은 직업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전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문제는 그게 너무나 당연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은 채 그 꿈을 접었다.

 “장래희망 뭐라고 썼어?”

 “화가.”

 “화가? 화가는 돈 못 벌잖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내 대답에 의아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유명하면 잘 벌지.”

 “고흐라든가 보면 그림 그릴 땐 가난하잖아. 대부분 그래. 넌 그것도 모르냐.”

 “엄마한테 물어볼 거야.”

 “그래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화가는 돈 못 벌어서 가난해?”

 “음...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럼 나 화가 하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닌데.. 좀 더 좋은 직업을 갖는 게 좋지 않을까?”

 “뭐? 난 그림 그리는 게 좋은데...”

 “그럼 미술 선생님 어때?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직업. 미술학원 선생님처럼.”

 “오호! 나 그럼 그거 할래.”

 매일 미술학원에 다니면서도 그 선생님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던 나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고, 그 이후로 쭉 미술교사가 장래희망이 되었다.

 “장래희망이 미술교사면 미대 가서 교직하면 되겠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나의 장래희망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교사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모두가 납득하는 나의 장래희망이었다. 그리고 23살.

 “뭐 할래?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뭐해 먹고 살래...”

 실명을 앞둔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교정사라는 직업이 있대. 점자책 만드는 거.”

 “그거 완전히 안 보여도 할 수 있대?”

 “응. 점자로 하는 일이니까.”

 “엄마는 안정적으로 특수교육과라도 편입했으면 좋겠는데.. 교사가 안정적이잖아.”

 “그건 무리야. 이제 막 기초재활하려는데 어떻게 그 많은 양의 공부를 감당해. 그리고 세월을 또 까먹을 순 없지.”

 그리고 나는 교정사가 되었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사 먹었다. 필요한 게 생기면 고민 없이 샀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곧바로 함께 갈 사람을 찾아 비행기를 끊었다. 많이 벌진 않았지만 내 욕구를 충족하기엔 부족하지 않은 급여였고 그렇게 1년, 2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허했다.

 ‘나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는 거야?’

 돈을 쓰고 일하고 돈을 받고, 그걸 쓰고. 쳇바퀴 같았다. 교정사라는 종착점에 남은 건 돈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싼 가방을 사거나, 고급차를 사는 등 씀씀이가 커지면서 취미활동을 하거나 겉모습을 꾸미며 사는 듯했지만 나는 그런 방면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눈이 안 보여서라고 하기엔 메이커에 예민해지는 사춘기 시절에도 남에게 어떻게 보이냐 보단 편하고 튼튼하면 그만이었다. 120살까지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무엇을 이정표로 삼고 나아가야 할까. 교정사로서 베테랑이 되어 명예나 권위를 가지면 행복해질까. 나는 과연 정점에 오를 때까지 달릴 수 있을 만큼 이 일을 사랑하는가.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까지 장래희망을 잘못 배웠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서도, 부모님에게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생각하라고 배운 적이 없었다.

 “나쁜 짓 하며 살지 않으면 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거기까지만 배웠다. 길고 긴 인생길에서 직업 외에 무엇을 갖고 살아가면 되는지 생각할 기회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슬퍼졌다. 우울한 검은 안개가 몸을 휘감는 듯했다. 불현듯 그동안의 장래희망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워졌다. 사회가, 엄마가, 선생님이 만들어준 게 아닐까. 때 묻지 않은 온전한 내가 바랐던 건 맞는 걸까.

 최근 2030세대의 우울과 은둔생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와 더불어 한편에선 초등학생 의대 대비반 기사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질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는 오늘날의 우리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믿었던 ‘장래희망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생각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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