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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n 26. 2023

비로소 알게된 살찐 양의 실체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 생각

 “시력을 잃으면 무엇이 가장 불편한가요?”

 강연을 가면 종종 받는 질문이지만 언제나 한 가지로 줄일 수 없을 만큼 답하기 어렵다. 떨어뜨린 물건을 찾는 것도 어렵고, 쇼핑을 할 때 성분표나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는 것도 불편하다. 무언가 계량하는 것도, 패키지 형태가 같은 상품을 구분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몸 개그에 나는 웃을 수 없는 점도,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담을 수 없는 현실도 괴롭다. 게임도 못하고, 근사한 뮤지컬 무대도 못 즐기며 4D나 모르는 언어권의 영화도 자막을 볼 수 없으니 화면 해설이라든가 더빙이 없는 한, 즐길 수 없다. 편의점 2+1 행사 상품이 무엇인지도, 신메뉴가 어떤 건지도 텔레비전에서 뭘 광고하는지도 알 수 없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도 조립 도안을 보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참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스타일링’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옷은 무슨 색이야?”

 “빨간색.”

 “어떤 빨간색?”

 “음... 장미색? 벽돌색? 애매하네...”

 “이건 무슨 무늬야?”

 “꽃무늬.”

 “어떤 꽃무늬? 꽃도 다양하잖아. 진짜 꽃 프린트한 거야, 아님 그림으로 그린 거야? 아니면 간단하게 캐릭터화 시킨 거야, 선은 굵은 거야, 얇은 거야, 아님 붓으로 그린 것 같은 거야? 꽃은 잔 꽃무늬야, 큰 꽃무늬야, 패턴은 규칙적이야, 아님 불규칙적이야?”

 “음.. 그냥 꽃무늬....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옷을 고를 때면 세상 서러워진다. 같은 빨간색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패턴도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림을 했으니 얼마나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이 나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알려주는 이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누구는 이 옷이 예쁘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저 옷이 더 예쁘다고 한다. 나는 그저 만져보고 상상해서 살 수밖에 없다.

 “이게 어울려? 아님 이게 어울려?”

 “왼쪽.”

 어찌저찌 옷 한 벌 사 가면 가족들이 촌스럽다거나 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엄마는 예쁘다고 하고 언니는 촌스럽다고 한다. 때로는 반대로 언니가 예쁘다고 하고, 엄마는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한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시력의 영역이 아니라 취향의 영역이다.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왜 다 다른 걸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구닥다리라고 했던 것들이 몇 개월 사이에 유행이 되고, 10년 전 스타일이 다시 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쇼윈도를 볼 수 없는 탓에 요즘 유행 패션도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 전에 비해 피부가 꺼메졌을까? 혹시 주름이 생겼을까? 기미는? 계속 똑같은 스타일인데 이제 나이 들면서 안 어울리는 건 아닐까? 이 자리에 이 옷을 입어도 되는 걸까? 화장을 안 해도 되는 걸까? 화장을 했다가 번졌는데 모르고 판다 눈으로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완전 스트레스야. 그냥 다 똑같이 입고 살았으면 좋겠어. 전부 똑같은 것만 팔고.”

 나는 이따금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그 정도가 줄었다. 그건 아마 내가 살찐 양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찐 양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그 시절 급격히 눈이 나빠지면서 나는 드러내진 않았지만 무척 곤두서 있었다. 옷에 묻은 얼룩도 보지 못했고, 레이스 장식도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창 멋 부릴 20대 여대생이니 시력을 잃어가는 건 분노 그 자체였다. 나만 소외되고, 이 세상에 동떨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자랑하는 악세사리도 도통 무슨 모양인지 알 수 없어서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하며 감탄하는 척했다. 그래야 자랑하는 사람이 기분 좋으니까 말이다.

 더 시력이 나빠지고 내 눈엔 무엇도 아름답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 모든 것이 무형에 가까워졌다. 도대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갔다. 나는 예쁘게 잘 차려입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 눈에 괜찮아 보일까? 늘 불안했다. 그때 미학 교수님의 강의가 귀에 박혔다.

 “아름다움은 결국 만족입니다. 아름다울 미(美)는 양 양(羊)에 큰 대(大)가 합쳐진 글자죠. 이 글자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양을 썼고, 그해 가장 큰 양을 제사에 올린 데에서 기원했습니다. 즉 살찐 양이 아름답다는 것이죠. 왜 가장 살찐 양이 올랐을까요? 그건 ‘좋다’는 표현이 너무 주관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양을 골라라.’라는 말에 사람들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양을 골랐을 테죠. 결국 최종 결정이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양의 경우는 다르죠.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제사가 끝난 뒤 부족 사람들을 먹이는 데에도 가장 큰 양이 좋았을 거예요.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매해 같은 크기의 양이 나왔을까요? 그렇지 않죠. 그때그때 다른 크기의 양이 나왔고, 때로는 작년보다 작은 양이 그 해엔 가장 큰 양이었죠. 결국 아름다움은 그런 겁니다.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저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죠.”

 주전공인 미술사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교수님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도 모르게 보이지도 않는 PPT 화면을 응시했다.

 “만약 아름다움이 절대적이었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상품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나라마다 다른 미의 기준이 생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 똑같이 정형화되었겠죠.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엔 지금의 여성상이 전혀 아름답지 않았어요. 추녀에 가깝죠. 깡마른 체형보단 통통한 체형이 아름답다고 여겼으니까요. 예전엔 인정받지 못한 작품이 오늘날 명작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실체가 없습니다. 각각의 취향이자 무형이죠. 비록 같은 문화권에 살면서 집단의식에 의해 형성될 순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결국 조금씩 다르죠. 어쩌면 우리가 명작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배워서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권위자나 대중은 힘이 세거든요.”

 나와 친구가 펜을 사러 가도 똑같은 것을 고르지 않는 이유, 옷을 사러 가도 다른 디자인을 고르는 이유. 그 근본은 만족감의 차이임을 그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몇 년 전 샀던 옷을 보고 ‘왜 이런 걸 샀지?’라고 스스로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 자신조차도 아름다움의 기준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증거다. 더불어 나는 시각이란 빛의 농락이라는 걸 깨달아가면서 살찐 양의 실체에 더욱 가까워졌다.

 “이거 하늘색인가?”

 “민트색.. 아닌가?”

 “민트보단 연둣빛이 좀 더 있지 않아?”

 같은 물건을 보아도 때로는 조명에 따라 인식하는 정도도 다르다. 색깔이든, 그림이든 결국 빛이 눈을 통과해 만들어지는 상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색을 본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같은 것을 보고 있기에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이 사물의 형태에 집중할 뿐이다. 그것만으로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보고 있다고 여기기 충분하다.

 “그건 좀 별론데.”

 “근데 이게 촉감이 부드러워서 더 좋아.”

 나는 내가 고른 것을 계산대에 올렸다.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 별로라고 한들, 적어도 이것을 만든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었으니 만들지 않았겠는가. 추천받은 걸 사더라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어딘가 또 있다. 어차피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순 없다. 그러니 내가 더 마음에 드는 걸 사면 된다. 보이지 않더라도 나만의 만족감에 대한 기준을 세우면 된다. 아름다움의 실체를 깨달은 후, 나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름답지 않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나만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자유로이 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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