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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l 10. 2024

그리운 나의 회색도화지 속 무지개

현대사회에 염증을 느끼며

 “어때? 예쁘지?”

 

 영호(가명)이 지수(가명)에게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우아, 대박. 언제 그렸대.”


 지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영호의 손톱을 유심히 관찰했다. 영호는 뿌듯한지 교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네일아트를 반 아이들에게 자랑한다.


 “헐, 완전 예뻐. 나도 해줘. 얼마나 걸려?”

 “다 하면 30분? 이따 점심시간 때 만 원에 해줄게.”

 “에이 너무 비싸다. 같은 반 할인 오천 원!”


 영호가 영업을 뛰느라 정신이 없다.


 “대박 뉴스 대박 뉴스!”


 허겁지겁 민희(가명)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뭔데 뭔데.”

 “희라(가명), 히피펌하고 학교 왔다.”

 “진짜??? 히피는 좀 센데? 교무실 안 끌려갔어?”

 “교문에서 바로 끌려갔지.”

 “난 걔 조만간 일 칠 줄 알았다.”


 교실 안 패션리더이자 악동 희라의 소식에 영호의 네일아트는 금세 뒷전이 되었다.


 내 고등학생 시절 교실 풍경이다. 수업 시간 절반을 그림을 그리는 커리큘럼에도 자기표현 욕구에 목마른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쉬는 시간에 네일아트를 하는 영호, 폰 케이스 아트를 하는 지수. 손가락 끝이 벌게지도록 니트 공예를 하던 민희. 한 뼘짜리 동복 자켓을 입던 지혁(가명). 거기에 히피펌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던 희라. 개성이 넘치는 교실이다. 일반 학교라면 눈살을 찌푸리고 교무실로 끌려갔겠지만, 그곳은 전교생이 미술을 한다. 어느 정도 허용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야야, 그거 알아?”

 “뭔데?”

 “점심시간마다 실기동 벤치에 있는 3학년 오빠들 있잖아.”

 “아 그 항상 둘이 붙어 다니는?”

 “어. 그 오빠들 게이래.”

 “아 진짜? 어쩐지 손잡을 때도 있더라. 묘한 분위기가 있었어.”

 “이야~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거의 없는데 그래도 마음 통한 사람이 있었네. 오래가면 좋겠다.”

 “그니까. 우리 반만 해도 50명 중 남자가 5명밖에 없는데. 난 응원한다에 한 표.”

 “나도 한 표!”


 나는 자리에서 그림을 끄적이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도드라진 자신의 색깔을 존중받고 싶기에 다른 사람의 색도 존중할 수 있다. 개성과 포용이 넘쳐흐르는 교실 풍경에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와하하 대박. 완전 똑같이 생겼어.”

 “저거 교장이지? 교장 얼굴 그린 거지? 겁나 똑같아.”

 “저기 맨 끝은 수학인가? 대박 특징 잘 잡았다.”

 

 학교 축젯날 4반 학생들이 연극을 준비했다. 교장과 교감, 학교 선생님들 캐리커처 가면을 쓴 아이들이 줄줄이 운동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자극.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스토리. 선생님들도 내가 저러냐며 아이들과 웃는다.


 “대파랑 양파 시들려고 한다. 뭐라도 해 먹자. 사과랑 당근도 그러네.”

 “뭐 사 올까요 샘?”


 정물화를 그리는 서양화 교실은 늘 유통기한 임박의 식자재가 있다. 버리기도 하지만 냄비에 그것들을 넣고 보글보글 요리하기도 한다. 버너도 냄비도 국자도 다 갖춰져있으니 주방이 따로 필요 없다.


 “야, 조소반 오늘 화덕 청소해서 파티한대. 삼겹살 파티.”

 “대박 대박!!”


 삽이 화덕 밖으로 나온다. 삼겹살이 육즙을 뿜으며 지글지글 소리를 낸다. 서양화반과 조소반이 풍기는 냄새에 다른 반 아이들이 몰려든다.


 일반 학교 학생들은 상상도 못 하는 학교 풍경. 나는 그런 환경에서 3년을 보냈다. 개성과 민폐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고 상상도 못 한 신선한 충격이 팡팡 터지는 매일이었다. 재미있다는 말은 시시할 정도로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대부분 미술 전공이라 웬만하면 거의 모든 걸 허용해 줬다. 그러고 싶을 때를 이해해 주었던 거 같다. 어쩌면 사회가 그렇지 않기에 학교라는 공간에서만이라도 우리가 빛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국은 점점 팍팍해지는 것 같다. 자본주의의 꽃인 개성이 사라졌다. 스윙폰, 폴더폰, 플립폰 등 다양했던 핸드폰 역시 이제 네모로 통일되어 버렸다. 이렇게 다양한 상품이 세상에 넘쳐나지만, 개성과 특별함은 고가의 사치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성공한 인생의 기준이 돈의 많고 적음으로 정의되고 있다. 마케팅에 속아 대중이 먹어본 음식, 가봤다는 곳, 갖고 있는 물건에 시선이 쏠린다.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SNS를 좇아 유행의 파도에 몸을 싣기 바쁘다. 다른 사람의 인정에 자신의 몸을 억지로 구겨 넣으려 애쓴다.


 나만의 신념, 나만의 맛집, 나만의 공간, 나만의 물건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서적, 행동적 획일화에 파묻히고 있다.

 분명 어렸을 땐 형형색색의 색을 지니고 있었을 텐데.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린 오늘날의 현대인들을 보면 슬퍼진다. 반짝반짝 빛나고 알록달록한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여전히 자신의 색깔을 갖고 있을까? 학창 시절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에 어른에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그 시절 그들로 남아있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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