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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l 28. 2024

소고기와 아버지

 소고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는 고기 중에서 소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굽든, 국에 넣든 소고기가 제일인 사람이다. 돼지고기는 삼겹살 말고는 먹지 않으신다. 그래서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라도 넣으면 차라리 김치만 넣고 만들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싫어한다. 닭고기는 돼지고기보단 먹기야 하지만 그래도 시큰둥하다. 닭볶음탕을 먹으면서도 고기는 소고기가 제일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편식쟁이라며 종종 내가 놀리면 당신께선 입이 고급스러운 거지 편식이 아니라고 하니 가끔은 아버지가 남동생 같기도 했다.


 반면, 나는 돼지고기 파다.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는 족발과 돼지갈비찜이다. 굽는 것도 양념갈비나 목살을 좋아해서 가격을 떠나 소고기는 스테이크를 제외하곤 잘 먹지 않는다. 이러한 취향은 어머니를 닮은 듯하다. 어머니 또한 돼지고기를 더 좋아해서 언니가 명절선물로 소갈비라도 들고 오려 하면 소고기는 맛없으니 무조건 돼지고기로 들고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한테는 내가 먹고 싶다고 했다고 말하신다. 왜 솔직하게 자신이 소고기 따위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어머니는 틀림없이 돼지고기 파다. 이런 탓에 명절 고기반찬도 아버지 기준으로 정해졌다. 무조건 불고기가 오른다. 밥상에서 투덜대는 소리는 듣기 싫은 법, 그러니 아버지 요구에 따라 메뉴를 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소고기를 좋아하니 맨날 소고기를 먹었겠다. 부럽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거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소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같이 비싼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었다. 고기는 한 달에 딱 두 번, 생일 달과 행사(졸업식, 입학식 같은 행사)를 제외하곤 먹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육식을 많이 즐겨봤자 좋을 건 없지만 한창 성장해야 할 청소년 시절엔 그게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남들 다 먹는 고기반찬도 먹기 힘들다고 부모님께 투덜댄 적이 있다. 그렇게 간신히 삼겹살 한 번, 소고기 한 번 먹는 것이 나에겐 큰 설렘이자 기쁜 월내 행사였다.


 대학생이 되고 선배들과 처음 족발이라는 엄청난 음식을 접했을 때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따졌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편식해서 내가 이 맛있는 음식을 여태껏 모르고 살았다고 내 유년기를 돌려달라고 말이다. 족발도, 항정살도 다 스무 살이 넘어 처음 접했으니 억울할 만하다. 내 말에 그게 뭐가 맛있냐고 족발이 어느 부위인지 아냐며 발이라고 했던 아버지의 대답이 생각난다. 발이든 혓바닥이든 맛만 있고 먹을 수 있음 먹는 거라며 고작 고기 하나로 수십 분 동안 언쟁을 펼쳤지만 끝내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 억울함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나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로 하여금 먹어보지 못한 고기 종류들을 섭렵하기 위해 고기 요리 도장 깨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소고기를 아버지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이제 나이가 많아 고기 먹는 게 치아에 부담되고 소화도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맛있는 고기는 소고기다’, ‘아니다, 돼지고기다’하는 유치찬란한 토론을 나와 벌였던 아버지는 어느새 70살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우렁차게 그게 뭐가 맛있냐고 외치던 아버지 목소리엔 이제 기운이 없다. 나이를 생각해서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해도 싫다며 젓가락을 거두는 아버지를 보면 속상하다. 매번 한우를 사드릴 수는 없어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이제 마음 편히 사드릴 수 있을 만큼 버는데... 기껏 숨차게 달려왔지만, 눈앞에서 버스가 떠나버린 기분이다.


 닭고기만 겨우 편하게 드시는 아버지를 보며 그냥 그때 한 달에 두 번 다 소고기를 먹을 걸 그랬나 싶어진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닭고기마저 못 드시게 되기 전에 이번 복날에 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사드리려 한다. 그러고 나서 오랜만에 ‘어느 고기가 맛있는가’ 100분 토론을 벌여봐야겠다.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시기 전에 그 시절의 기운 좋은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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