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를 알아보는 신호 3가지
아무래도 X 됐다.
A와 처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지 고작 하루 만에, 내 머릿속을 강타한 불길한 예감이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과거의 쓰라린 경험치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렸다. 좋든 싫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A는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그날 난 이번에도 통제광 나르시시스트의 궤도에 들어서고 말았다는 게 퍽 우스웠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꽤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쓰고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A였지만 속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A는 자신을 굉장한 작가라고 소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다른 기성 작가들 앞에서는 한껏 몸을 낮추며 겸손한 척 연기하는 데도 능숙했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꾸는 그녀의 이중적인 행동은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고 강자 앞에서는 약해지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었다. (강자와 약자는 순전히 A만의 기준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모임 도중 "사실 제가 정신병원에 다녀요"라는 고백을 툭 던지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오직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 왜곡된 내면에 깊은 상처가 없을 리가 없었다.
본인이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타인이 몇 시에 일어나는지, 언제 글을 쓰는지, 몇 시간 동안 글을 쓰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다른 사람이 그 책의 감상을 어떻게 느끼는지까지 보고하라고 요구하며 타인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드는 상황에서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A는 자기 안의 고통을 용기 내어 드러내는 솔직하고 강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그녀의 고백에 안쓰러움을 느꼈고, 그녀를 존중했으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 역시 처음에는 같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스스로의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처음 느꼈던 그 서늘하고 불편한 직감은 좀처럼 희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그 실체를 드러냈다.
A의 말과 행동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 그랬듯이 누군가의 의견이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듣기 싫어했다. 자신이 대화의 중심이 되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린아이처럼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물론 그때마다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댔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자기 방어를 위한 수준 낮은 변명일 뿐이었다. A의 모든 말과 행동 저변에는 숨 막히는 강압, 즉 ‘내 말을 듣고 나를 인정해!’라는 절규 같은 메시지만이 흐르고 있었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과 밤새 읽었던 수많은 심리학 책 덕분이었을까. 나는 A에게서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무사히 안전이별 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의 주변에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 관계를 신중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관계는 아닌지.
모든 대화는 놀랍게도 항상 A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순간에서조차, 그 칭찬은 결국 자신을 높이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되었다.
"음, 너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나처럼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은 아직 부족해 보여.", "내 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봐."
A는 위와 같은 뉘앙스의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대놓고 잘났다고 이야기하진 않아도 교묘하게 자신의 칭찬을 유도한다.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교묘하게 자신을 더 높은 곳에 두려는 태도, 끊임없이 자신을 과시하고 동시에 타인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의 대표적인 행동 패턴이다.
A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매우 서툴렀다. 모임의 다른 멤버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힘든 감정을 내비쳐도,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네 사정이고, 네가 알아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상대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을 쿨한 것이라고 포장했다.
이런 모습을 반복해서 목격하며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이 부재하거나, 혹은 공감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의 감정은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주는 배경 소음이거나,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일 때가 많다.
A는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는 것 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타인에게 교묘하게 주입시키는 가스라이팅의 달인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묵살했고, 자신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대뜸 "이렇게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할 거면 쓰지 마. 내가 쉽게 이해하도록 써야지."라는 식으로 쏘아붙이며 노력과 정체성을 한순간에 부정하려 했다.
C에겐 "왜 더 날카롭게 작품 분석을 못하냐."라고 말하며, 아무 문제없는 피드백하는 방식까지 지적하곤 했다.
그녀가 정한 임의의 기준에 맞는 글만이 '글다운 글'이라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다른 작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게다가 A는 인풋 자체가 부족한 사람이었는데, 정작 그녀의 피드백엔 객관성이나 전문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A의 글도 피드백도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요구뿐이었다. 난 당연히 가볍게 무시했지만 그 의도는 명백했고 거기에 휘둘리는 일부 사람들을 보며 점점 더 이 모임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다.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여, 결국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심리적 지배술. 나르시시스트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우리는 살다 보면 지독한 나르시시트를 만나기도 한다. A처럼 자기애라는 단단한 성곽 안에서, 세상은 오직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듯 보이는 사람을 말이다.
만약 당신 주변에도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인지 한번 돌아보는 것이 좋다. 행복하고 건강한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