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트레이키즈 당신은 심수봉

꼰대와 마주하며 깨달은 것

by 윤채



나를 지우는

착한 호구는 이제 그만




최근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이른바 '꼰대'와의 대화.



나에게 세대 간 단절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내가 살아온 시대와 확연히 달랐다. (우리 부모님보다 많이 어린 꼰대인데도 취향은 훨씬 올드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방향이 달라졌다. 요즘 내가 깊이 빠져 있는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키즈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대했던 공감이나 최소한의 호기심 어린 반응 대신 돌아온 것은 무관심이었다. 이후 이어진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그는 내 말을 끊고, 자신의 세계관에 갇힌 예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심수봉으로 상징되는 그의 음악 세계는 견고했고, 그 세계 안에서 나의 스트레이키즈는 마치 존재조차 없는 듯 취급되었다.




챗gpt가 그린 용복



그 순간, 나는 강렬한 소외감을 느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꺼낸 이야기가 아무런 존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당하는 기분.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내비쳤을 뿐인데, 그 세계는 그의 대화 속에서 지워졌다. 이건 단순한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즉 '존중의 부재'가 낳은 침묵의 불편함이었다.



나는 그의 심수봉 취향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가수를 좋아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세대마다 추억과 선호가 다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가 스트레이키즈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경험만을 기준 삼아 나의 취향을 평가절하한 태도였다. 그의 언행은 전형적인 '꼰대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만을 옳다고 믿는 태도는 결국 누군가를 침묵하게 만들고, 그 존재감을 지워버린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묶여 살았다. '착해야 사랑받는다'는 사회적 암묵 속에서, 나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편의를 먼저 배려하는 습관이 들었다. 이번 대화에서도 처음엔 익숙한 습관대로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조심히 끊었다.



"역사책에서만 봐서 모르겠네요."



나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엔 오랜 시간 참고만 있던 감정의 끈이 조용히 끊어지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대화를 돌렸다.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더 이상 '착한 호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을 억누르고 존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존중받지 못한 경험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 불편함을 내 안에서 응시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나 자신을 지우지 않기 위해 필요할 때 단호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결단. 그것이야말로 타인의 기대가 아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세대 차이 자체는 결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남긴 또 다른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그 다름을 귀 기울여 듣고자 하는 태도, 상대의 세계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다. 존중 없는 다름은 폭력이고 존중이 깃든 다름은 공존이다. 세대의 간극은 결국 이해와 존중이라는 다리로만 건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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