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페이지 : 나의 운명은 내가 만들어간다
당신이 되고 싶은 운명은 그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만이 정할 수 있다. -랄드 왈도 에머슨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의 개수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삶이다. -에드워드 J.스티글리츠
어느 날 문득, '될놈될'이라는 세 글자가 가슴 한복판에 차가운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될 놈은 된다'는 뜻이라는데,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린 바람처럼 쓸쓸해졌다.
분명 어떤 순간에는 '그래, 나도 언젠가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미한 불씨를 지펴주기도 하지만, 이내 그 불씨는 '정말? 내가?' 하는 불안의 연기에 가려져버린다.
마치 세상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길 위를 걷는 특별한 사람들이 따로 있고,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길목에 들어설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땀 흘려 노력하는 것조차 허무하게 만드는 잔인한 말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저 티끌처럼 작고 무력해지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만약 정말로, 혹시나, 남들이 말하는 그 '될 놈'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그저 이대로, 정해진 운명이라는 이름의 틀 안에 나를 구겨 넣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런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밤하늘의 별빛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 앞에서 반짝이는 눈을 했다. 동화 속 왕자님처럼,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딘가 신비롭고 근사한 운명의 이끌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나비가 꽃을 찾아가듯 운명이 나를 찬란한 미래로 데려가 줄 거라 생각했던, 어쩌면 조금은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삶이라는 현실의 땅을 밟고 걸어가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운명은 누군가가 내게 선물처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 발로 직접 걸어가며 발자국을 새기고, 넘어지면 무릎을 털고 다시 일어서며, 한 땀 한 땀 나의 시간을 엮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 빅토리 북>에서 만난 한 구절 앞에서, 오래도록 그 문장을 눈에 담았다.
운명이라는 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된다는 건데, 나는 그딴 운명론은 믿지 않는다. 내가 되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내 운명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이근, p64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속 깊이 자리했던 불안의 덩어리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될놈될'이라는 말이 나를 그토록 불편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말은 마치 운명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차갑게 속삭이지만, 진짜 운명은 저 멀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며 지금 이 순간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과정 그 자체였다.
결국 '될놈될'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미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고 뒤늦게 붙이는 이름표 같은 것 아닐까.
처음부터 '될 놈'으로 태어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되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매 순간 자기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믿으며 나아간 사람들이 결국 그 자리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그들이 정한 기준에 내가 '될 놈'으로 부합하는지가 아니다. 오직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믿고, 내 심장이 뛰는 방향을 향해 꾸준히, 나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내딛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될 놈'이 아니면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이름의 좁은 틀 안에 나를 가두는 대신,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길을 만들기로 했다. '될놈될'이라는 단어의 차가운 무게감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 하루 내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주인이 되어 나만의 색깔로 한 땀 한 땀 나의 운명을 수놓아가고 싶다.
그 불편함 덕분에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정해진 도착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낼 무한하고 빛나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의 매일매일을 소중히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 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나다운 멋진 운명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나를 믿는 오늘이, 바로 그 시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