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신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by 윤채



부디 존중부터 배우길




"내가 믿음을 보여주면, 너도 자연스럽게 믿게 될 거야."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이다.



나는 남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줏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교회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는 것이지 남이 강요해서 다니는 곳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원치 않는데도 이러한 '자연스러운 믿음'의 영역을 침범하려 들거나 노골적인 강요의 형태를 띠는 권유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흔하고 반복적인 경험은 이렇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안부를 묻다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교회 이야기를 꺼내며 꼭 한번 나와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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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두 번은 상대방의 선의라 생각하며 정중히 거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자신의 신앙 안에서 얻은 좋은 경험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거절 의사가 명확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심지어는 가벼운 안부 문자나 소셜 미디어 댓글에까지 교회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반복될 때면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권유로 느끼기가 힘들다. 명백한 강요로 느낀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마치 삶에 교회가 없으면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때면, 불편함, 답답함, 그리고 나아가 나의 선택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는 불쾌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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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만 이러한 강요의 시선을 불편하게 여긴다. 종교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며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인의 권유나 압력에 의해 시작된 신앙은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 참된 믿음은 누군가의 등을 떠밀거나 억지로 손을 잡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고 마음의 울림을 따라 결단할 때 비로소 싹트는 것이다.



'믿음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믿게 될 것'이라는 말속에는 상대방의 의지와 선택을 무시하고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변화시키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숨어 있다.



네가 열심히 믿는다고 해서 나도 열심히 믿게 될 거라는 건 도대체 무슨 논리란 말인가.



참된 믿음은 누군가의 등을 떠밀거나 억지로 손을 잡고 이끄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고 마음의 울림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 때 비로소 싹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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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이러한 강요 앞에서 '착한 호구'처럼 애매한 미소로 얼버무리거나 불편함을 속으로 삭이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과 선택은 그 누구의 강요나 평가도 필요 없음을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종교는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

"교회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간다."



반복되는 강요에는 대화를 피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지킨다.



나는 타인을 위해 신을 믿는 어리석은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진실함과 주체성을 지키려는 당연한 노력이다.



종교를 포함하여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나의 선택 역시 존중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며 나 자신에게 진솔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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