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희퀸님의 시선에서 배운 창작의 태도
AI 아트 프로페셔널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계기는 단순했다. 내가 쓴 글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직접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머릿속 상상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단순히 이미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장면을 내 방식, 내 언어로 시각화하고 싶었다.
미술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손으로 그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AI 아트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혼자서 공부하다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지만, 당시 강의를 맡았던 A라는 사람에게 큰 기대는 없었다. 예술을 전하려 하기보다는 자격증이라는 상품만을 내세운 지나치게 상업적인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그의 방식이었고 그것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난 누군가의 수익 구조에 맞춰진 무의미한 소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원했던 건 '기술'로서의 자격이 아니라, 감각으로서의 '예술'을 위한 시작점이었다.
한동안은 웹소설 원고에 집중하느라 AI 아트는 손에서 멀어졌지만 감상만큼은 놓지 않았다.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작품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어떤 감각이 좋은 그림을 만드는가'에 대해 조금씩 배워갔다.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준희퀸님의 작업은 유독 오래 눈에 남았다. 색감, 구도,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흐르는 한 사람의 시선. 기술보다 감각이 먼저 말하는 그림들이었다.
□ 준희퀸(Junheequeen) 소개
-서양화가
-디지털아티스트
-AI크리에이터
-아트 디렉터
-데일리투데이 칼럼니스트
준희퀸님의 작품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감각이란 뭘까.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나만의 예술을 펼쳐갈 수 있을까.
그러다 운 좋게 최근에는 준희퀸님과 협업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낯간지러웠다. 다른 사람의 작업 위에 내 문장을 얹는다는 건, 내 감정과 언어의 온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펼쳐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작업에 내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결의 즐거움이었다.
AI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이상한 사람도 만났지만 AI라는 도구를 넘어 진짜 예술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단순한 기술자나 기능적 창작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와 감각을 구축해 가는 진짜 예술가들을 말이다.
한 장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질 때, 내가 가장 먼저 바라보는 건 픽셀의 해상도가 아니라 그 안에 스민 감정의 결이다. 형태와 구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그것은 내게 예술이 아니다.
AI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내가 한 문장을 망설이는 사이 수많은 이미지가 생성되고 그 안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간다.
AI는 사람을 대신해 무엇이든 그려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어떤 감정과 어떤 기억을 담아야 하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내가 지나온 실패들, 내가 골라낸 색들, 그리고 나만의 감각은 한 장의 이미지 속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스며든다.
그래서 오늘도 반복한다. 시도하고, 수정하고, 때로는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그린다. 무엇이 나다운지, 무엇이 내 마음을 건드리는지 그 감각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조율한다.
무수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직접 시도해 보는 건 완벽한 그림보다 나의 감각이 살아 있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조금씩, 천천히 작은 빗방울이 호수를 만드는 마음으로 말이다.
AI는 사람을 돕는 도구이고, 그 도구를 움직이는 감각은 언제나 사람의 내면에 있다. 자격증이 증명하는 건 기술일지 몰라도 내 작품이 말해주는 건 감각이고, 태도이고, 내가 이 세계와 맺는 방식이다.
오늘도 어제보다 더 나은 시선으로 자라고 있다. 그 성장은 AI가 아닌 나만이 해낼 수 있는 감각의 결과라고 믿는다.
● 성공은 대단한 일을 가끔 할 대보다 사소한 일을 꾸준히 할 때 찾아온다. -마리 폴레오
● 시작하는 방법은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곧장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
●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널리 퍼져 있는 망상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친절하다거나, 악하다거나, 어리석다거나, 활기차다거나, 무감각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부활,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