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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울해서 빵 샀어 대신 글쓰기

마음이 힘들 때 왜 글을 쓰면 좋을까?

by 윤채



빵으로도 치유가 되지 않던 날,

글이 나를 살려줬다




나 우울해서 빵 샀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 얘기 같아서.



우울할 때면 습관처럼 베이커리나 카페를 찾았다. 진열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제일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고르곤 했다.



다이어트를 해야지, 마음먹으면서도 빵을 고르는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우울할 때 빵을 찾는 건 내겐 일종의 리추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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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전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유명한 성심당에서 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남들 눈엔 여행이었겠지만, 내겐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한 도피였다.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하려니 원치 않는 뒷말이 나올까 두려웠고, 상담을 받으려니 그 또한 부담이 되었다. 그런 내게 무거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갓 구운 빵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당분은 위로 같았고, 빵의 온기는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빵을 다 먹고 나서도 마음속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입은 채워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그래서 그날 빈 노트를 하나 꺼냈다.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버겁던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와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든 고문 같았다. 괜히 내가 나쁜 딸이 되는 것 같고, 스스로 가슴을 난도질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자유롭게 놓아둔 것이다.



처음엔 울면서 썼다. 맞춤법이니 글의 형식보다 그저 쓰는 행위 자체에 다음을 담았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조금씩 나를 지켜주었다.



글은 내 감정을 판단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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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마음을 잠깐 눌러주었지만, 글은 그 마음을 꺼내주는 힘이 있었다. 그날 이후, 빵을 먹으면서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감정과 나란히 앉기 위한 작은 실천이었다.



그즈음, 왜 글쓰기가 내면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심리학 서적들을 찾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가 단지 습관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처럼 진짜 회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글쓰기가 정서 회복과 자기 이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첫째, 글쓰기는 내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머릿속에선 흐릿하게 떠돌던 감정들이 글자가 되면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내가 어떤 감정 속에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글을 통해 선명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명명(emotional labeling)이라 부르며, 정서 조절의 첫걸음으로 여긴다. 나는 "오늘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라고 썼던 날을 기억한다. 그 짧은 문장이 며칠이나 내 기분을 설명해 주는 유일한 언어였다.



둘째, 글은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창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을, 글은 묵묵히 들어준다. 종이 위에서는 어떤 감정도 비난받지 않는다.



표현하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돌볼 수 있는 것이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의 외재화(externalization)' 과정이기도 하다.



셋째, 글을 쓴다는 것은 곧 그 자체가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행위다.


쓰면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왜 나는 이렇게 느꼈을까?" 그 질문 끝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 글은 내가 나에게 다정해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하루는 "내가 너무 별거 아닌 일에도 무너져버렸어."라고 썼고, 그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으며 비로소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깨달으며 진정으로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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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글쓰기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건 내 마음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의식이었고, 무너지는 순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조용한 리추얼이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이 부서질 듯 흔들릴 때마다 글을 썼다. 처음엔 처절한 생존처럼 나중엔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이렇듯 글쓰기를 통해 감정의 주인이 되는 법을 조금씩 배워온 세월은 짧지 않다. 요즘에도 감정적으로 힘들 때면 따뜻한 빵 한 조각을 떠올리듯, 나는 조용히 펜을 들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하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를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무엇보다 내가 나의 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다독이는 문장을 한 줄씩 써 내려간다.





● 요즘은 매일이란 바다의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이해인,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먼저 나를 바라봐 주자. 사람은 자신을 알아갈수록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 -이무석, 30년 만의 휴식

● 도덕적인 여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 인물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그 행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나 동기에도 달려 있다. -토머스 하디, 더버빌가의 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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