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고일지와 유턴을 넘는 법
그날 나는 무언가를 끝냈는데 조금도 끝낸 것 같지 않았다.
첫 번째 전자책을 탈고했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하게 비어 있었다. 몇 번이고 갈아엎고 기운을 다 쏟아붓듯 다듬었지만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며들 듯 차올랐다.
완주했으니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충분함'이라는 말이 잘 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은 미련이 아니라 애정이었다. 그만큼 오래 바라보고 오래 안고 있었던 글이었기에.
글을 쓰는 사람에겐 '이만하면 됐지'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말은 머리에서 이해되는 것만큼 쉽게 마음에 내려앉진 않는다.
그래서 아직 식지 않은 여운을 꾹 눌러둔 채 곧장 두 번째 전자책을 쓰기 시작했다. 멈춰서 망설이기보다 다시 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다.
제목도, 목차도, 마지막 문장도. 이번 책은 GPT와 함께 글을 쓰더라도 '나답게'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루틴 안내서다.
누구나 쉽게 글을 시작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래서일까.
요즘은 오히려 '나의 문장'이 무엇인지 자주 묻게 된다. 나는 그 질문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여섯 걸음으로 길을 냈다.
감정을 기록하고 문장을 따라 쓰고 단어에서 문장을 만들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마지막엔 AI와 협업하는 것. 그 여섯 개의 루틴은 글쓰기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자 잃지 말아야 할 나만의 언어를 지켜내는 길이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값비싼 강의 대신 프롬프트 하나만으로도 혼자서 조용히 쓰고 싶은 이들을 위한 다정한 지도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물론 이 여정이 내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창조성이 앞만 보고 달릴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은 문장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는 거지?' 같은 마음이 속삭이듯 밀려왔다. 그 순간이 바로 창조성의 유턴이었다.
최근 15회독을 마친 『아티스트 웨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창조성의 유턴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동정해야 한다."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땐 쉽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탈고 직전, 무게감에 눌리듯 주저앉고 싶었던 며칠을 지나며 나는 그 문장의 뜻을 천천히 깨달았다.
작가란 자신이 쓴 문장을 가장 오래 붙드는 사람이다. 때로는 한 줄의 문장 앞에서 몇 시간을 맴돌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스쳐 지나갈 문장이 내겐 삶의 고백이고 증언이고 생존이었다. 그렇게 나는 유턴을 피하지 않고 감당하는 법을 조금씩 더 깊이 배워갔다.
이번 책은 혼자서 조용히 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계속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응원서다.
정밀한 기술이 문장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도 감정을 쓰는 일만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니까. 나는 그 몫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었다.
탈고 직후 세 번째 책도 곧장 쓰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쓰는 사람'은 잘 쉬는 사람이기도 하기에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전자책과 웹소설 원고를 쓰느라 미루어 두었던 책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쓰지 않는 시간도 결국 글쓰기의 일부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6월은 밀물처럼 창조성이 넘실대다가 어느 순간 유턴처럼 빠져나가던 시간이었다. 그 흐름을 막을 순 없지만,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방향을 찾는 법은 배울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묻는다. 나는 왜 계속 쓰는가. 이 물음은 물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문장으로 나의 하루를 살아간다.
● 용서했다고 해서 반드시 화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창욱, 걱정이 많아서 걱정인 당신에게
● 이제 나는 평화로워. ~ 나는 평안해. -루이스 L. 헤이, 치유
●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을 찾고, 내면의 확신에 도달하며, 그 길이 어디로 이끌든 앞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