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원망 사이, 글쓰기로 회복한 시간에서 배운 치유
엄마와 사이가 좋으면 좋겠지만, 참 쉽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엄마는 욕심쟁이였고, 엄마가 보기엔 나는 모자란 딸내미였다.
나는 엄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썼지만 엄마를 만족시킨 적은 없었다. 늘 부족한 딸은 무얼 해도 항상 미움받을 짓만 골라하는 밉상이 되어 있었다. 잘해도 부족했고 못하면 더 미운 그런 딸이 나였다.
이러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대학을 진학했다. 거리라도 두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잔소리는 거리 따윈 상관없었다. 전화로, 문자로, 뜻밖의 방문으로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효도'라는 강박 속에 살고 있었다. 엄마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모녀였지만 내면에는 죄책감과 억눌린 분노가 들끓었다. 몸은 자주 아팠고 이유 없는 눈물이 자주 났다. 남들에게는 따뜻한 단어일 '엄마'가 나에겐 '마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돌아올 반응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인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혹여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엄마를 욕하는 딸'로 느끼며 더 깊은 죄책감에 빠질 거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날이 왔다. 숨이 막히고, 더는 버틸 수 없던 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엄마 때문에 불행하다>였다. 처음에는 문장도 아니었다. 감정의 파편들이 그대로 쏟아졌다.
엄마가 싫다.
괴롭힘 당하는 건 나인데, 왜 내가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지?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어.
지금 보면 유치하고 거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는 그 말들이 필요했다. 이렇게라고 속마음을 꺼내지 않으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렇게 글을 쓰며, 내 감정의 진심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를.
그러자 진짜 '나'가 보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음은 '엄마'가 보였다. 왜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날카로웠을까.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내가 아빠를 닮아서?
내가 엄마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자꾸 자극해서?
엄마의 말들이 떠올랐다.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내가...
내가 얼마나 참고 사는 줄 알아?
그 말들을 글로 옮기고,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내 아픔과 동시에 엄마의 고통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고, 아빠와의 관계는 늘 불안정했으며, 경제적인 짐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여성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글을 쓰면서 조금씩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마녀' 같던 엄마가 쓰디쓴 인생을 살아낸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엄마가 미운 날에는 더 많이 썼다. 처음엔 살기 위해 썼지만, 그 글은 나를 살렸고, 엄마와 나 사이를 조금씩 이어주었다.
여전히 완벽한 화해 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엄마의 한 마디에 마음이 휘청일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참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글을 꾸준히 써온 만큼 회복 탄력성도 더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서로의 말을 조금은 더 듣게 되었고, 완전히 닫혀 있던 문틈 사이로 옅은 바람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만든 이 다리는 느리지만 분명히 우리를 연결하고 있다.
살기 위해 쓴 글이 결국 나를 살렸다.
그 글들이 엄마와의 관계도 새롭게 쓰게 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나는 믿는다. 요즘도 가끔 엄마가 미운 날엔 글을 쓴다. 그건 나를 위한 일이고 동시에 엄마와 나 사이의 또 다른 대화이니까.
● 나이가 들거나 계급이 올라가면, 혹은 세상에 이름이 조금 알려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자랍니다. -최성현,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느라 현재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미시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 아름다운 것들에서 추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전혀 매력이 없는 그저 타락한 존재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