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도덕의 문제는 그때그때 바로잡아 주자
큰딸애가 작은딸애 머리칼을 잡아당긴 모양이다. 큰애는 아니라고 우기고 작은애는 머리칼을 잡아당긴 게 맞다고 우기는데 이런 경우는 작은 딸애 말이 맞을 확률이 높다. (이건 그냥 두 딸애를 키워 온 나의 오랜 경험상의 직감과 직관이다.)
나는 큰 딸애를 안방으로 불러 내 앞에 세웠다. 작은애는 머리칼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나는 큰딸애에게 말했다.
왜 머리칼을 잡아당겼지? 그건 나쁜 행동이야.
왜 나만 가지고 그래?
큰 딸애가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난 그러지 않았어,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너만 야단치려는 게 아니야. 아빠는 지금 너가 아니라 너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어.
안 그랬어!
큰애는 부정했다. 나는 묻는다.
머리칼 잡아당기지 않았단 이야기야?
그래. 안 그랬어.
나는 큰 딸애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내가 처음 부르자마자 부인했을 것이다. 그건 두 번째 나쁜 행동이다. 즉 거짓말이다. 작은애는 여전히 바닥에 누운 채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나는 그것이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사람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행동은 잘못된 거야. 아빠는 그 행동을 용서할 수 없어. 아빠가 네가 잘못했다는 이유로 너의 머리칼을 잡아당긴 적이 있니?
묵묵부답.
다시 말하지만 그 행동은 잘못된 거야.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 가 봐.
큰 딸애는 아빠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정을 지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뒤 내가 딸애 방에 들어갔을 때 큰 딸애는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가. 혼자 있게 내버려 두란 말야!
나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왔다.
사춘기가 세게 왔네.
아내가 말했다.
맞다. 사춘기다. 하지만 내 딸애는 (내 아이여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난한 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착하고 순하고 예의바르며 비교적 정직하다. 한 마디로, 큰애는 잘 자라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 동생을 대할 때는 예외다. 두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속되어 온 일이다. 물론 내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구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형제 관계의 전형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큰 딸애를 이해하면서도 줄곧 큰 애를 야단쳐 왔다.
큰 딸애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거의 대부분 큰 딸애만을 야단쳐 온 기억 때문이다. 둘이 싸우면 폭력은 거의 다 큰딸애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생각할 때마다 애비로서 미안하고 찡하고 짠하다. 큰딸이 만약 큰애가 아니었다면, 동생을 가진 언니가 아니었다면 큰 애 역시 그런 행동을 할 일조차 없었을 테니.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일부러 이유 없이 작은애를 야단칠 때도 있다. 열 번이면 한두 번은 둘째를 나무란다. 일종의 쿼터제 같은 것이다. 둘째가 잘못해서라기보다 큰 딸애만 너무 일방적으로 야단맞는 데 대한 조치인 것이다. 싸움의 책임은 큰 애에게만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이 아파도 야단은 쳐야 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일러주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