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아이는 교육의 전형적인 실패작이다
나는 친한 친구와 종종 만나고 언제나 말다툼을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관계, 그런 만남, 그런 친구도 있는 법이다. 더구나 발전하고 성장하는 관계엔 늘 문제가 있는 법이다. 작은 문제들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친구와 나는 종종 캠핑을 같이 간다. 가족끼리도 가고 가끔은 친구와 단 둘이 가기도 한다. 밥을 지어먹고 맥주를 마시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말다툼이 시작되곤 한다. 대부분은 교육이라는 주제에서 다툼이 생긴다. 내 친구는 대한민국 여느 부모와 같은 타입이다. 물론 나는 대한민국 교육 풍토에 비춰보면 별종 중에 별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관점으로 보면 내 친구가 지극히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습시켜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성공적인 교육이다 - 내 친구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인격, 철학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자라고 배운 것,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 배움에 대한 가치관, 인간의 성장에 관한 철학 등이 모두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담긴다. 그러니 아이 입장에서는 누굴 부모로 두는가, 가 성장에 결정적인 변인이 된다.
나는 자녀가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 자녀에 관한 한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첫 번째다. 그것은 실제로 감사한 일이다. 자녀가 없는 이들은 그들 대로 행복한 삶을 살겠지만 자녀가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 고르라면 나는 고민 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내 생각에, 둘은 근본적으로 적절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굳이 비교를 해야 한다면 자녀 없이 고양이를 키우는 삶과 자녀 없이 개를 키우는 삶을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녀에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우선은 내가 이것을 실천해야 하고, 아이가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인간은 배운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는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배운다. 특히 부모는 더욱 그러하다. 대충 이것저것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혁명이라 할 정도로 인간은 자녀를 통해 성장한다. 자녀 키우기에 혼신을 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는 이라면 더더욱 이러한 혁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녀는 처음엔 귀찮은 존재였다가 시간이 가면서 내가 의지하는 존재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내가 부모로서 얼마나 노력했는가 여부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내 아이가 좋은 대학 안 가도 괜찮아.
나는 친구에게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대학은 무척 중요하다. 대학의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대학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어떻게 자기 영역을 더 확장해 나갈 수 있는가, 를 모색하는 활동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나는 내 아이가 하버드나 예일 같은 곳에서 공부하길 원한다. 명문대에 가라는 말이 아니고 좋은 스승을 만나 그를 통해 학문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너 그러면 나중에 네 아이가 원망하면 어떻게 할래?
좋은 질문이다. (너처럼 교육시켜서) 대학에 못 가거나 좋은 대학에 못 가거나 혹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성적이나 학습에 대한 다그침을 받지 못했다, 라는 원망을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그럴 일이 없을 거야.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말한다는 것은 친구와 친구의 자녀, 그리고 친구의 교육 방식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네 아이에게 학습을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성적으로 다그치기 전에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 있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질 줄 아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첫번째야, 친구야!
물론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대개 두 가지로 반응한다. 첫째는 타인이나 세상을 탓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 세계에서 찾는 인간이다. 이것은 편리하고 또 쉬운 방법이리라. 그러나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이를 목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킨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바로잡으며 어렵지만 한 걸음씩 발을 떼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인간으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자 목표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급해질 것이 없다. 천천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내 아이와. 시간은 충분하고 아이는 나이에 걸맞게 성장하는 법이다. 부모는 아이를 관찰하고 밀착해 대화를 나누며 설득하고 삶이란 긴 여정을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