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이 또 싸웠다 2(내 아이 어떻게 키워?)

나의 성장은 모든 이를 이롭게 한다

by 김정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딸애는 안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팔베개를 하고 딸애를 내 옆에 뉘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할 말을 골랐다.

D616C6BD-5F35-4A46-8766-630D6A62115F_1_201_a.jpeg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냥... .


활리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충 엄마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엄마가 활리를 이해해 주지 않았니?


응.


딸애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학원에 가기 싫어 돌아온 것,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와 나눈 대화, 엄마가 숙제도 많고 학원 수업도 많아 힘들다. 시간이 너무 없다는 등의 자기 이야기에 동의해 주지 않은 것. 그래서 화가 난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 표정이 그래? 라며 자신을 다그쳐 물은 것에 어리둥절해진 것까지.


활리는 대학생이 아니다. 스무 살이 넘지 않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4시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학원으로 가고 거의 밤 8시까지 수업을 한다. 돌아와서는 학교와 학원 숙제를 한다. 밤 12시까지. 이건 살인적인 학습이다. 보통의 나라라면, 중학생이 이런 정도의 학습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이건 비정상인 데다 미친 짓이다.


나는 내 딸애들이 스웨덴이나 미국, 프랑스나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이 아이들이 이토록 살인적인 학습량을 버텨내야 할 의무는 사회가 준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부모가 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만큼은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은 최소한의 그들의 권리라고 생각해서였다. 아이 시절에 놀지 않으면 언제 노는가? 놀이는 아이들의 학습이자 성장의 핵심 요소다. 이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학습에 매달리도록 종용하는 것은 어른들이다. 대한민국의 어른들 말이다. 나는 그런 어른, 그런 부모, 그런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다.


활리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활리는 초등학생 시절 내내 자유를 만끽했고, 에너지를 비축했으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마다하지 않고 학습에 매달렸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힘을 실어주려 노력했고, 학습 이외 시간은 충분히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했다.


아이를 교육시키는 근본적인 목적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이유를 부여하고 자기 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학습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엔 놀이가 필요하고, 사랑과 애정, 신뢰가 필요하며 자유시간과 취미활동, 인간관계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필요하다. 우리사회 아이들에겐 학습 이외에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거나 너무나 부족하다. 이러한 결과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나타난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자기소개서 한 장 써내지 못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사회성이라곤 제로인 데다 이기주의에 빠져 저 자신밖에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아내는 이러한 나의 생각에 상당히 동의하지만 그건 절반쯤에 그치고 나머지는 우리사회 행태에 동조하는 편이다. 나는 그런 아내를 십분 이해한다.


아내가 좋은 엄마, 좋은 부모, 좋은 양육자가 될 수 있게 대화하고, 또 내 두 딸애들이 제대로 된 교육과 양육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라 믿는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나는 미래에 관해서 역시 낙관적이다. 우리 두 딸애가 믿음직하고 쓸모있는 인간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데 한 점 의심이 없다. 이들은 사회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될 것이고, 성공적으로 자기 생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내가 어떻게 두 딸애를 키웠는지, 어떤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두 딸애의 성장을 도왔는지 차근차근 하나하나 브런치를 통해 적을 생각이다. 많은 관심 주시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내와 딸이 또 싸웠다 (내 아이 어떻게 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