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엄마와 기자아빠가 싸웠는데 판사엄마가 울어버린 사연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담아라, 그리고 그 말에 책임을 져라

by 김정은

우선 이 글은 어떤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깔아뭉개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혀야겠다. 대한민국 현직 판사를 모독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그저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일 뿐이다. 특히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그런 일 말이다.



54046B3B-5166-4E63-9F43-171DA9B6B232_1_105_c.jpeg

-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의 내 끝딸애 모습이다.



이 사연은 거의 7-8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첫 딸애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일이고, 내 큰딸은 지금 중학생이 됐다. 그러니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떠올려 본다. 이 일로 인해서 내 큰 딸애는 영문도 모른 채 삶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명을 영영 못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내 딸애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나 때문에, 나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딸애가 그런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억울함도 있다. 딸애를 자녀로 둔 부모가 어떤 일로 서로 논쟁을 했다고 해서 자녀의 친구 사이까지 깰 일일까? 그러나 어쩌랴. 사람 일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내 큰 딸애에게는 당시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고 그녀들은 소위 삼총사처럼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다. 어린이집에서도 바깥에서도. 딸애들 덕분에 학부모들까지 친한 관계가 형성됐고 우린 가족 단위로 여행도 같이 갈 만큼 가까워졌다.


우린 어느덧 서로의 직업을 알게 될 만큼 친해졌다. 나는 공영방송 카메라기자이고 내 아내는 공기업에 다닌다. 활리의 엄마 아빠 직업이다. 내 딸애의 한 친구 부모는 엄마가 판사이고 아빠가 변호사였다. 둘은 서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쳤다고 했다. 나머지 친구 부모는 아빠가 서울의 모 대학 교수이고 엄마는 피디였다.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만나다 보니 이 안에서도 암암리에 직업을 근거로 한 계급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직업으로는 우리가 제일 빠지네... .


아내는 종종 가족 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내 역시 느낀다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그날은 판사와 변호사를 부모로 둔 아이 집에서 모였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엄마, 아빠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나 맥주를 많이 마셨고 제법 다들 취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좀 자유롭게 크고 위화감 같은 것이라곤 없이 공부하고 친구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협력자로 대할 수 있는 인격적인 교육을 받으며 컸으면 합니다.


교육 이야기가 나와 나는 내 생각을 말했던 것 같다. 내 말은 대충 그런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아마 이 말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말에 판사 엄마와 피디 엄마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아내만 그 웃음소리 속에 없다는 것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웃죠?


나는 물었다. 내 불쾌감이 가득 담긴 질문이었으리라.


그냥 웃은 건데요? 별 뜻 없이.


판사 엄마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나름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웃음은 조금 당황스럽군요.


나는 약간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자 판사 엄마가 대뜸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나쁜 뜻으로 웃은 거 아니에요. 사과하세요!


물론 이렇게 한번에 말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나쁜 뜻으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먼저 말했고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며, 마지막에 사과하라, 는 말이 돌아온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나도 나쁜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 아닙니다. 사과하라면 사과드릴게요.


나는 말했다.


분위기가 사뭇 험악해졌고, 남자 셋이 함께 밖으로 나왔다. 우린 필로티 공간에 서서 내리는 비를 보며 담배를 같이 피웠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하기 뭣하지만 나도 활리 아빠와 생각이 같아요.


변호사 아빠가 말했다.


나도 동의해요.


교수 아빠가 맞장구를 쳤다.


두 아빠가 나를 위로하듯 동시에 말을 건낸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요?


아닙니다. 원래 성격이 좀 불 같아요.


판사 엄마의 남편이 말했다.


괜한 말로 화가 나게 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하죠.


나는 진실로 후회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아빠 셋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술맛은 떨어졌고 분위기는 완전히 다운되어 있었다. 잠시 뒤에 안방으로 들어갔던 판사 엄마가 다시 거실로 나와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울음을 떠뜨리면서.


빨리 사과하세요!


아까 사과 드렸는데요.


다시 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나는 말했다. 내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옆구리를 찔렀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방안에서 놀고 있었는데 활리를 데리고서 차를 탔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아내는 돌아가는 중에 구토를 했다.


내가 눈치도 없이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아내는 말했다.


근데 나는 오빠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아. 오빠 이야기에 웃는 그 사람들이 나는 더 실례한 거라고 생각해.


아내는 내 편에 서서 이야기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비를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내 아이가 친한 두 친구를 잃게 된 것으로 끝난다. 나는 그 사실이 가슴아프다. 졸지에 베스트프렌드를 두 명이나 잃게 됐으니. 3-4년 정도가 흘러 내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됐을 때 나는 당시 사건의 전말을 큰 딸애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그래도 너무해. 어른 싸움 때문에 친구도 못 만나게 되고.


미안하다. 아빠가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렇게 돼 버렸네.


나는 몇 번씩이나 아이에게 사과해야 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지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들이 웃는다 해도 그냥 넘어갈 것 같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두 명의 베스트프렌드를 계속 만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둘째딸 뺨을 수시로 때린 아이를 집에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