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수포자 만들려고 작정한 건가?

언어는 한 인간을 바보로도, 영웅으로도 만드는 형틀이다

by 김정은

이런 말은 정말 조심스러운데, 수학에 젬병인 것 같아. 기본적인 걸 이해 못 해.




아내는 말한다.


큰 딸애는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생이다.


나는 아내를 나무랐다.


분명히 말하는데, 그런 말은 다시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해.


아내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이다. 아내는 어린 시절 소위 수학 우등생이었고, 스스로 자부심이 크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할 때 수학은 언제나 즐거운 대상이었고, 동년배 중 수학 능력이 우수했으며 그것은 어린 시절 아내의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사람은 타인을 바라볼 때 자기 관점으로 평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늘 옳지는 않다. 높이 솟은 장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이가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법이다.


뛰어난 사람이 언제나 뛰어난 선생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벽을 느끼고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간 경험이 있는 소위 부진했던 경험을 지닌 이가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의 능력은 가르치는 것보다 벽을 무너뜨리고 공포와 편견을 부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있어야 한다. 즉 사수의 능력이 아니라 심리학과 의사의 능력이 우선하는 것이다.


학습이란 벽돌을 쌓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학습에 대해 줄곧 이렇게 정의내려 왔다. 학원에서 초중고생들을 7년 간 가르쳐 봤던 나의 경험은 이러한 내 생각을 증명해 낸 시간이기도 했다. 재주가 없어, 재능이 부족해, 원래 못 하는 아이야, 라는 편견과 낮은 자존감으로 기가 꺾여 온 아이들을 나는 단 몇 개월 만에 재능이 있는 아이, 잘하는 아이, 소질이 있는 학습자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학습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실력, 재능, 재주라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 믿음은 실제로 수많은 학습포기자, 무재능자들을 정반대의 위치, 즉 우수자, 재능인으로 만들어냈다. 나는 하나의 가설을 세워놓고 이를 실험하는 임상의학자처럼 아이를 가르쳤고 오래 걸리지 않아 우수한 결과를 냈다. 내 가설은 충분하다 싶을 만큼 입증되었고 나는 오늘날 선생이나 부모로부터 재능이 없다는 꼬리표를 받고 이에 좌절하는 많은 아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건 벽돌 쌓기 같은 거란다. 벽돌을 쌓는 데 어떤 재능이 필요하지?


힘?


아이가 반문한다.


그래 맞아 힘. 하지만 힘만으로는 부족해. 힘들어도 마지막 벽돌 하나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끈기와 성실성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나는 이걸 해낼 수 있다, 라는 너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해. 그렇겠지?


응.


벽돌이 너무 많아. 나는 하기 싫어. 너무 힘들어. 어려워. 이렇게 속삭이는 네 자신을 향해서 아니, 난 할 수 있어. 해내야만 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마침내 난 이 벽돌을 다 쌓고 말 거야. 자신있어, 라고 말해줘야 해.


알았어.


내 말에 아이는 다시 힘을 얻는다.


내 아내는 이제 다시는 그런 말을 아이 듣는 데서 꺼내지 않는다. 활리는 지금 몇 달째 수학을 공부 중이다. 실력은 확연히 늘었고, 이제 제법 교실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아이로 불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활리는 매일 벽돌을 옮기고 쌓는 마음가짐으로 수학 공부를 해내고 있다.


아내의 말 대로였더라면 어쩌면 활리는 수포자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활리는 수학을 싫어했고, 어려워했고 두려워했으니까.


수학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이런 말을 활리는 고백하듯 참 여러 번 내게 했었다. 그때마다 아빠로서, 나는 활리를 곧추세우고 겸손한 학습자의 태도, 겸손한 벽돌공의 태도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활리는 믿음을 가지고 벽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이제 제법 훌륭한 초기 숙련자의 모습을 갖춰가는 중이다.


수포자, 영포자, 이런 말을 함부로 써서는 곤란하다. 학교는 수학 천재, 언어 천재를 발굴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어느 분야를 전공하게 되든 학습에 필요한 기본 정보를 익히고, 지능을 확장시키고 성장시키는 장소여야 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이러한 철학이 부재한 듯하다. 아이를 포기자로 만들어버리고 낙인찍는 수많은 부모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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