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픈 기억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고 이는 하나의 허들일 뿐이다

by 김정은

해고란 걸 받아봤는가? 이는 실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 중에도 최악에 속한다. 나는 서른 두 살 이전까지 비정규직 생활을 경험했고 해고도 당해 봤다.




예감은 했다. 해고 통보를 받기 전날, 그럴 만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D707D651-3D51-46CF-BA2C-403558E6AE32_1_105_c.jpeg 넌 오늘부터 해고야! 학원장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리고 엄정한 투로 말했다.


난생 처음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로) 받은 일방적 해고 통보였고, 지금까지도 가끔 그 일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내겐 충격적이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참고로 첫 번째 일방 해고 통보는 대학생 시절 알바 중에 야한 영화를 보고 있다가 들켜서 잘린 일이었다) 그러니 정식으로 채용돼 근무하는 중에 첫 해고 통보인 것이다. 이따금씩 꿈에서도 그 상황이 재현되어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학원이란 곳에서 만 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 기억으로 7년 간 이직만 네 번 이상 했는데 (학원 교사는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이직의 이유는 늘 휴식이었다. 내 체력으로, 한곳에서 버틸 수 있는 최장 기간은 길어야 2년이었다. 우선은 말하는 일은 무척 고되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하루 10시간 가까이 매일, 거의 주말도 없이 말을, 그것도 힘주어 하는 말을 쏟아내야 하는 직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아이들은 집중력이 흐트려져 있고, 그런 아이들을 조련해 한 길로 인도해 나가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온몸의 모든 에너지를 바닥나게 하고 긍정의 감정까지 고갈시키는 노가다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이 제곱으로 쌓이고 피부가 메말라가고 활력이 소진된다.


그래서 나는 최장 2년을 버티다가 그만두고 한두 달 쉬고 나서야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해 주면 안 될까?


학원을 그만둘 때마다 원장으로부터 애원을 들어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는 강사였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는 점이 아이들에게나 원장에게나 학부모들에게나 괜찮은 강사로 분류되기에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정말이었다. 몸이 그만두라고, 이제 조금 쉬라고 신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머뭇거림 없이 그만둘 것을 밝혔다. 그때마다 원장들은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 자신이 어느 장소에서 쓸모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니까.


이제까지 한 번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더 해달라는 애원이 아니라 나가달라는 통보, 즉 해고 통보를 받고 학원을 그만둔 일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비밀처럼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일이다. 일부러 숨겼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쪽에 해당하리라. 물어보는 이도 없었고, 나를 아는 이들은 아, 또 좀 쉬고 다시 일하려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으리라. 나 최초로 잘렸어, 같은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최초의 해프닝은 예고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직감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 학원은 시내에서 제법 대형 학원이었는데, 신도시라 학원의 물리적 규모에 비하면 학원생이 많지 않았다. 출근해 보면, 학원이 왠지 텅 빈 느낌이었고, 선생들은 저마다 도시가 사람들로 채워지기만 하면 교실은 금방 학생들로 채워질 거야, 하는 믿음을 가진 양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당시 학원장은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반면 생활 속에서는 얌전한 중년 남자였다. 그는 정치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면 말수가 거의 없었고 태도 역시 아주 젠틀했다. 단지 정치 이야기를 할 때에만 이상하다 싶을 만큼 유독 예민하고 거칠어졌는데 그것쯤은 봐 줄 수 있는 정도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 아주 양아치 -- 야. 그런 생양아치는 국회가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버려야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식으로 특정 정치인을 비하하고 모리배 취급하곤 했는데 그건 아마도 보수 신문(극우 신문)을 즐겨 읽는 데다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생활 속에서 굳어진 그만의 정치색 때문인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7-80년대 학원운동에 대해서는 반감이 가득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학원생이 많지 않아 학원 경영이 어렵다고 어폄풋이 짐작할 수 있었는데 원장은 그런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급여일이 되면 자신의 방으로 선생들을 한 명씩 호출하고 흰 봉투 안에 현금을 넣어 한 마디 정성스레 건네곤 했다.


한 달 동안 수고했어!


그 말이 끝이다. 나는 그의 그런 심플한 태도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학원 생활은 꽤 괜찮았다. 선생들과 친하게 지냈고 아이들과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의 발단은 1년 정도 지난 후에 일어났다. 어느 날 학원장이 재단으로부터 해고된 것이다. 학원장은 갑자기 출근하지 않았고 선생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새로운 학원장이 올 것이란 이야기를 했다. 마치 저승사자에 대해 묘사하는 것처럼 아마도 새 학원장이 오면 칼바람이 불 것이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뭔지 몰라도 기분좋은 일은 아니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한 달쯤인가 지나서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아래 위로 맞춘 우아한 정장을 입고 단발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 제법 전문가답게 꾸몄다. 그녀가 새 학원장이었다. 그녀는 30여 명쯤 되는 선생들을 교무실에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다. 요지는 지금부터 비상경영 체제로 돌입한다는 것, 학원이 이대로 간다면 문을 닫을 것이란 것, 그러니 학원생 모으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달라는 것 등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은 칼을 가지고 왔으며 자신의 학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생은 한 달 내에 해고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저 여자 눈 밖에 나면 잘리겠구나. 그리고 그중엔 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아마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선생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새로 온 학원장은 첫 날부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저승사자마냥 뒷짐을 지고 레이저라도 쏠 것처럼 눈을 크게 부릅뜬 채로 학원 내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마치 누구를 먼저 자를까, 하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이. 그때 나는 내 발로 나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수업 스타일상 아이들을 쥐어짜고 억지로 정보를 주입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데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이를 설득하고 태도를 교정해 성적을 올리는 유형이라 학원장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처음 고백하건대, 그날 한 수업에서 나는 잠깐 졸았다. 어떻게 선생이 졸아? 그렇게 말하는 이가 있겠으나 선생도 사람인지라, 잠깐 조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이 내 경험상 말할 수 있는 진솔한 고백이다. 물론 7년 동안 일하면서 깜박 존 일은 다섯 번 이하에 불과하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 나는 나도 모르게 깜빡 졸았고 그 순간을 저승사자 새 학원장이 창 너머로 보고 있었다.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섬뜩한 순간이었다.


단어 테스트 전에 5분 정도 외울 시간을 주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따라 내 눈이 자동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처럼 감겼다. 아차 싶어 눈을 떴을 때 저승사자 학원장이 창문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이 왔구나! 직감했다.


그날 새벽,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조깅을 하면서, 나는 예감했다. 정신 상태를 새롭게 교정하고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이는 가차없이 해고된다고 엄중 경고를 내린 마당에 졸다 걸린 꼴이 되었으니 피해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원장이 나를 호출했다.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와 나 단 둘이 있는 원장실에서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곤 말했다.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아. 이유는 알지?


나는 변명은 생략하고 곧바로 짐을 챙겼다. 그리고 학원을 나왔다. 물론 기분은 홀가분함이 아니라 찝찝하고 왠지 수치스러웠다. 모멸감까지는 아니지만 그것 비슷한 것이 온몸으로 퍼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저 인간과는 맞지 않으니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야!


나는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뉴스 기사에서 직원이 잘렸다, 출근해 보니 책상이 없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도 여지없이 그 생각이 나곤 한다. 그 기분을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나 이후로도 십여 명의 선생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20년이 족히 지난 지금, 나는 가끔 그 학원 자리를 가 본다. 물론 그 학원은 없어지고 다른 영업장이 들어서 있다. 이제 도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옛날 같은 느낌이 아니다. 나는 학원에서 잘려 짐을 싸 바깥으로 나왔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 여자는 80살 내외의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으리라. 정장을 차려입고 눈을 부릅뜬 60대의 여자는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 나를 기억하지는 못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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