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목표라는 것은 언제나 그에 걸맞은 결과와 한 쌍이다
여러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전투에 가깝다. 모든 것이 걸려 있고, 실전 역량 전체가 투입되고, 그것이 분명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어서 글쓰기는 전투와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라는 전투 행위에 참전 중이다. 너도 나도 글쓰기라는 링 위에 올라오고 있다. 가히 열풍이라고 할 만한 풍경이다.
목적도 제각각이리라.
그래도 책 한 권 써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 전투에 - 그 알량한 전투에 - 한 번쯤 나가서 싸워보고 싶어. 나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대개 마치 결혼은 한번 해 보고 싶어, 애는 꼭 갖고 싶어, 누구누구 콘서트에 가는 게 일생의 소원이야, 순례지에는 반드시 갈 거야,라는 말의 의미 정도로 해석된다.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글쓰기를 전투로 보지 않고 그저 버킷리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 것이다.
글쓰기를 무엇으로 보든 글쓰기란 행위 자체는 녹록하지 않다. 전투를 무엇으로 이해하고 참전했든 일단 교전이 벌어지고 격렬한 폭력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땐 전투의 의미가 살아 움직이며 나를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이끌듯이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기묘한 일이지만 실제로 전쟁에 참여해 전사한 이들 중엔 깊고 심각하며 진지한 적의 없이 지원했다가 변을 당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지구상 도처의 묘지에는 진정한 남자가 될 거야, 한 번쯤 가 봐야 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고 전장에 나가 죽음을 맞은 이들의 비석으로 가득하다.
작은 전투는 쉽게 끝나고 작은 상흔만을 남기는 것과 같이 자신이 참여하는 전투의 크기에 따라서 혼돈과 상흔의 크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누구나 링 위에 올라올 수 있지만 얼마나 버티는가는 각 개인에게 달린 문제다.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이 사실 글쓰기는 쉬운 전투가 아니다. 체력과 의지, 목표의식과 소명의식, 부단한 훈련과 연습이 없다면 링 위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나는 저 링 위에 올라가서 한번 부딪혀보고 아니면 그냥 내려오지, 뭐. 물론 이런 정도의 마인드라면 그저 한번의 체험 정도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과정, 글쓰기란 행위는 여기에 해당한다. 책 한 권을 집필하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할 수는 있겠지만 다섯 권, 그리고 열 권, 나아가 스무 권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 번 읽어도 족한 책이란 단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다.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이, 사실 책에 대한 평가는 섬뜩하고 싸늘할 정도로 냉혹한 것이다. 단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라... .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라고 한다면, 시중 서점엔 이런 책들이 넘쳐난다. 아니, 대부분의 책은 그런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는 옥석을 가려야 하는 일이 남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은 늘 가변적이고 오래 유지되는 하나의 기준이 뚜렷하게 있지 않다. 다행히 스테디셀러라는 지표는 그런 혼돈 속에 하나의 믿을 만한 표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 뭘 골라 읽어야 할지 쉽사리 결정이 서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나는 스테디셀러를 집어라, 라고 권하고 싶다. 스테디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란 법은 없지만 그나마 좋은 책일 확률은 확실히 높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책을 가까이 두고 읽고 쓴 사람으로서 책에 관한 한 할 말이 많으나 책쓰기라는 주제로 돌아오게 되면 언제나 몸이 움츠려지고 부끄럽고 소심하며 두려워진다.
한 마디로 좋은 책을 쓸 거야.
물론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말하곤 한다. 왜냐면 내가 생각하는 책,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꽤나 복잡하고 오래된 히스토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란 뭘 뜻하는가? 이 질문의 답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의미다. 아마도 좋은 책이란 주제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써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책을 쓰도록 만드는 동기는 이보다 간단하고 수월하게 설명이 된다.
돈을 벌고 싶어, 라는 내 안의 욕망은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고백해야겠다.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돈이란 지표는 명성, 권위, 인정, 확장 등 여러 의미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이는 로또에 운명을 걸 듯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긴 해도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색깔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욕망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교차하는 지점이 꽤 크다. 다만 글을 쓰도록 만드는 동기로써 돈은 일정한 행위, 부단한 노력과 끈기, 엄청난 일의 압박과 무게 등의 차원에서 단순히 로또 당첨으로 주어지는 돈과는 그 성격이 다르겠지만.
한 인간을 '자신이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간 형태'로 만들어나가는 과정. 사실은 이것이 글쓰기의 요체다.
수없이 자신을 깎고 다듬고 수정하고 지우고 갈고 붙이고 확장해나가는 과정, 죽었다 살아나는 파괴와 부활의 반복이 글쓰기라면, 그것은 일종의 수행이자 높은 수준의 가치를 열망하는 인간의 성장과 연관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렇게 생각하고 글쓰기란 전투에 참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사람이 써 놓은 글을 보면 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버킷리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링 위에 올라오는 이들이 지금도 긴 줄을 이루며 서 있는 광경을 본다.
글쓰기의 동기에 돈이란 욕망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면, 글쓰기의 자격(그런 것 따위는 없을 수도 있지만)이란 게 만약 있다면 그 자리엔 소명이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늘 죽어도 이 말은 반드시 남겨야만 해.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치가 있어야 하고 어떤 면에서 숭고하고 높은 이상을 지녀야 한다. 그렇기에 글쓰기란 길고 지난한 준비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단숨에 좋은 책을 써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으로써 돈은 매우 소중하다. 작가는 먹을 것이 필요하고 근사하게 입을 옷도 필요하다. 비가 내려도 젖지 않고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지붕이 튼튼한 집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욕망의 밑바닥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