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투잡입니다만...

자신을 설득시키는 단 하나의 목표가 없다면 이미 방향을 잃은 것이다

by 김정은
B0F26DF0-A82B-44CA-A466-939F8C92B92B_1_105_c.jpeg


서른두 살에 공영방송 영상 부문 기자로 입사했다. 그 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순진하고 순수한 때였으니!


나는 일과를 마치면 어김없이 글을 썼다. 결혼을 하고도, 첫 아이가 태어나고도,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도, 그녀들이 자라서 어엿한 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나는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는 중이다.


그렇게 회사에서는 기자로, 집에서는 작가로 살아왔다.


18년째다.


지칠 법도 할 만한 긴 시간이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기자는 대체로 싸우는 직업이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하는 일이다. 나태해지고 소심해지고 겁먹고 움츠려드는 자신과 싸워야 한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이제 외부와의 싸움을 할 수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사회부정의와의 싸움이다. 권력과 나태, 영합과 부패에 물들려는 동료들, 회사 경영진, 그리고 정치 집단 등은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고 짓누르고 회유하려 든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말한다면, 한마디로 못 해 먹을 일이다. 나 자신을 회사원으로 정의내린다면 물론 일은 아주 간단해지리라.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착착 해내면 그만이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낼 수도 있다.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참극이 벌어지든 참사가 일어나든 나는 내 할 일만 척척 해내고 퇴근하면 된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커피를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노닥거린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이 없을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기자들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절대 절대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기자를 우리 사회는 용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생겨먹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 빌어먹을 양심이 그런 것은 허락을 하지 않는다.


사회의 크고작은 모든 문제가 마치 내 문제인 것만 같고 내가 기자질을 잘 못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야 없겠으나 나는 사회정의(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에 복무하고 싶고 그것을 위해 일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건강해지고 정의롭고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는 데 내 손 하나를 보태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내 기자 생활은 어렵고 순탄하지 않았다.


동료들을 설득하고 싸우자고 부추기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다그쳤다. 십몇년 간 그렇게 힘겹게 싸워왔다. 결과는? 폭망이라 할 만큼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옛 말이 있는데 왜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꼴통 딱지가 붙은 모양이다. 언제나 승진에서 누락되었고 기회에서 열외가 되었다. 나를 증오하거나 나만 보면 분노를 참지 못 하는 몇몇 인간들이 생겨났고 상대하지 못할 인간쯤으로 낙인이 찍혔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단 한 줌의 후회가 없다. 옳다고 믿는 바를 따라 행동했고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된 게 없으나 그리하여 이 세상의 본성이란 것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게 됐으니.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18년간 집에서는 꾸준히 글을 써 왔다. 투 잡이다. 글을 쓰는 일은 참 고된 것인데 역설적으로 그게 나에게는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나는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글 쓰면서 풀고 거기에다 온갖 분노를 쏟아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은 아주 건강하고 그 흔한 질병 하나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작가란 것도 생각 만큼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을 몇 편 써서 공모에 집어넣었으나 그 어렵다는 최종 심사까지 올라가서는 번번이 떨어졌다. 다행히 출판사 눈에 들어 사회비평서 두 권을 출판했다 - 출판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에도 출연했다. 하하하.


이 세상 어디엔가는 나와 같이 투 잡, 쓰리 잡 아니 혹은 원 잡을 뛰면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그들과 나는 분투라는 측면에서 동지다.


그들을 향해 말하고 싶다. 계속 하시자고. 계속 가시자고. 그러다 보면 뭐라도 하나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얻는 게 하나 없을지라도 죽는 순간에 우린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만큼 전쟁을 치르듯 살았고 최선을 다했고 내가 가진 아주 작은 재능으로 꽃 한 송이를 피우려 그처럼 힘겹게 걸어왔으니! 이것 하나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제 어디에서나 합격하는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