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처음 하버드 교정을 밟았을 때

부모란 아이의 보모가 아니라 스승, 멘토여야 한다

by 김정은


D37A6563-7160-4CBC-A8E8-9E5E40B35CF5_1_105_c.jpeg 큰 딸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 녀석은 지금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하버드를 방문한 것은 2007년이었다. 그해, 나는 KBS에 입사했고, 첫 해외 출장지가 미국 동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며 맡았던 냄새, 생경한 불빛과 분위기, 키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취재를 위해 예일과 MIT. 하버드 등을 방문했는데 뇌리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문학, 철학, 역사를 좋아해요!


우리 팀이 다양한 국적의 하버드생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을 때 푸른 잔디밭에서 책을 읽던 학생들이 일관되게 답변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내내 문학, 철학, 역사를 공부했다. 순전히 독학이라 해도 될 만큼 그것들은 수업과 크게 연관이 없는 것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인문학에 관심이 갔다. 책을 쓰고 작가가 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학문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 4학년 때 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마르크스 철학으로 마지막 리포트를 썼고 만점을 받았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학생이 자네였어.


교수는 말했다.


하버드 교정에서는 실제로 마르크스 철학을 같이 공부하자고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는 학생들 무리가 있었다. 나는 살면서 아쉬움이란 게 남아 있지 않지만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대학을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에서 다니지 못한 것이다. 내 이력에 화려한 한 줄을 남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의 수업 태도에 실망했고, 거기엔 진정한 열의가 없음을 실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다만 나는 열정을 가진 교수 한 명을 만나고 싶었고,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그를 통해 지적 성장을 하고 싶었다.


한땐 교수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글 읽기를 좋아하고 책 쓰는 것을 즐기며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내 성향에 비춰볼 때 최고의 직업이 될 터였다. 물론 나는 일찍 그 꿈을 접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유학은 언감생심이었고, 나는 그저 혼자 공부하는 일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 내가 하버드와 예일 등 아이비리그를 취재하러 갔으니 당시 들뜨고 행복했던 내 감정을 이루 말로 다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나는 다시 하버드와 예일을 방문했다. 어엿하게 자란 내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가 하버드군!


내 큰 딸은 하버드의 푸른 잔디밭을 걷고 교정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언젠가 네가 이곳에 와서 열정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온다면 그건 아주 큰 기회가 될 거야!


나는 딸애에게 말했다.


수많은 한국 학생들이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한다. 그들은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하고 그 어려운 난관을 뚫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물론 내 아이는 그런 모양으로 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다. 진짜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간판을 위해서 대학을 가는 것 따위에 나는 관심이 없다. 내 아이 역시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학 시절, 나는 가장 먼저 도서관에 갔을 때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 책을 펴고 앉아 책에 줄을 하나씩 그어나가며 지식의 창고 안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는 느낌을 즐겼다. 아무도 없는 빈 도서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푸른 교정을 내려다보는 일은 즐거움 그 이상을 느끼게 했다. 도서관 건물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어둑어둑해진 곳을 걸으며 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갈 때 무언가 뿌듯해진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곤 했다. 지적 즐거움이다. 내 경험상, 인간에게 있어 그것 이상으로 나 자신을 고양시키고 만족시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대학생이 그 기분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대학 생활을 하기 원한다. 간판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타오르는 열정을 체감하면서 지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하루하루 받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를 얼마나 염원하는지 모른다.


10년 후에 네가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한다면 좋겠구나!


나는 딸애들에게 말했다.


여기 들어오려면 공부 잘해야 돼?


잘해야지.


그럼 학원 다녀야 돼?


꼭 그렇진 않아. 하지만 지금부터 하루하루 경험을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 돼. 우선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책을 읽으렴. 열심히 놀고 신체를 단련하는 것도 중요해. 그리고 조금씩 공부의 즐거움을 알아나가는 거야. 그렇게 의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쩌면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생길지도 모르지. 아빠는 너희들이 충분히 그럴 만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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