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

나 자신이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노력하고 성장해야 한다

by 김정은
에휴, 꼰대들아!



꼰대 (구글, 나무위키)

노인,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자 멸칭. 점차 원래의 의미에서 의미가 확장, 변형되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윗사람 또는 연장자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누구나 꼰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또 꼰대 같은 인간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다. 우선은 내가 꼰대가 아니어야 하고 그다음엔 내게 다가오는 꼰대를 피해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꼰대는 대체로 나이가 많고 권위 혹은 지위, 권력이 있으며 말이 많고 자기 경험과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사람쯤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일면 맞긴 하다. 하지만 꼰대는 나이를 불문한다.


요즘 사람들, 너도 나도 말을 조심한다. 꼰대로 비칠까 조심스러운 건지. 조심을 넘어 웬만하면 말을 안 하려고 하는 경향까지 있다 - 물론 이는 최근 들어 생긴 흐름은 아니나 좀 더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를 피하고 젊은이는 기성세대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본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말은, 그런 경향이 요즘 더 두드러진 듯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말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행위인가? 또 얼마나 생산적이고 도파민을 분비시킬 만큼 흥분되는 일인가? 문제는 정작 중요한 주제는 대화 기피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가령 정치와 같은 난해한 주제, 역사나 삶의 문제(철학) 같은 복잡한 주제 등에 관해서 사람들은 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단순하고 얕고 간단하고 재미 위주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 그게 진짜 대화라고 단정해 버리는 느낌이다.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너무 진지한 거 아니야?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찾아다녔다. 청년과 대화하기를 원했고 즐겼으며 그것을 진정 의미 있는 행위로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처형당했다.


나 역시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젊은이와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물론 대화라면 상대를 딱히 가리지 않는 편이나 이왕이면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잠재력이 있고, 장차 이 사회를 짊어질 세대다. 그만큼 성장해야 하고, 세상의 고통과 부딪혀야 하며 발전해야만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모범이 필요하고 선생이 필요하며 촉매제가 필요하다. 나는 부족하나마 나 자신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의 잠재력이란 갈고 다듬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잠재력은 빛을 잃어갈 수 있다. 그것이 안타까워 젊은이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후배들, 말이 없다.


젊은이들, 대화에 관한 한 의욕이 아예 없어 보인다. 본인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란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말을 걸어도 왠지 시큰둥하다. 이 친구들, 삶의 의욕 자체가 없어 보인다.


냉정하게 말하겠다. 요즘 후배들, 알고 싶은 것도 없고 더 성장하려 발버둥 치는 의지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향후 크게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나는 후배들 중 내 예상을 깨고 반전을 일으키며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이가 나오길 진심으로 염원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반항과 분노는 젊은이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이는 인간 성장의 발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다뤄 보려고 하는 의지는 젊은이에게 광채를 일으키는 마법 같은 요소다. 움직이고 스킨십을 하고 주장하고 알려고 하는 이에게는 아우라가 있다. 요즘 후배들에게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일을 하고, 주식을 사고, 부동산에 관심을 둘 뿐이다. 얕고 무의미한 주제에 관해서 대화하며 웃고 즐기는 것에 그칠 뿐 더 깊이, 더 높이, 더 광범위하게 뻗어나가려 하지 않는 듯하다. 이는 생체학적 나이에서만 젊은이일 뿐 이미 늙은이다.




나는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말 자체의 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대화는 나 자신을 파괴시키고 또 부활시킨다. 나의 약점과 단점, 모자람, 얕음, 게으름은 대화를 통해 발견되고 극복되고 내 지식은 다시 생기를 되찾게 된다. 나는 더 알고 싶고 알려하고 노력한다.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덜 아는 것, 나아가 아예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내 눈에 들어오고 나는 무지와 편견을 깨부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의지가 있는 한 나는 꼰대일 수 없다. 나는 젊은이다.


나는 꼰대에 대해 내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알려하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지적으로 멈춰 있는 인간. 이것이 꼰대다. 이런 상태에서는 생산적이고 지적이며 거기에다 즐겁기까지 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냄새나고 뻔하며 새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은 대화가 가능할 뿐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이 상태에 빠져 있다면 나는 꼰대라고 본다. 포용도 관용도 너그러움도 없으리라. 꼰대란 광기, 꼰대란 전염병, 꼰대란 바이러스는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공기처럼 돌아다니며 한 인간을 감염시킨다. 이미 굳어진 생각, 인식이 정지된 상태, 더 이상 나아가려는 의지가 꺾인 것, 성장하고 발전하려는 동기가 굳어져 버려 퇴화된 인간에게 남은 길이란 꼰대밖에 없다. 조금 더 온화하고 조금 덜 온화한 차이 정도가 있겠으나 그것은 그저 온화한 꼰대, 덜 온화한 꼰대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발전하려는 발버둥이 메말라 버렸다면 나이 불문하고 꼰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타자를 향해 귀를 열어야 한다. 내 입을 벌려 나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나에게 말을 거는 모든 이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 꼰대를 만나면 피하면 된다. 그러나 나 스스로 대화를 기피하고 지금 이 상태에 머무는 것에 안주하게 되면 그것 자체로 매우 꼰대스러운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꼰대로 퇴화시키지 않을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제법 고통스럽고 귀찮으며 꽤나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없이 성장하고 진보할 방법은 없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싫으며 아무와도 깊은 토론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것은 우울증이나 허무주의, 무기력증과 같은 궤도를 돈다. 그러한 삶에는 생기가 없으며 성장이 결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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