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이란 단단한 조각물의 결과다
그때였으니 가능한 이야기였으리라. 때는 1980년대 후반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됐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인천에 살았다. 현대가 지은 신축 아파트 단지는 끼끗하고 늘 텅 빈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동은 산 바로 밑에 있었는데 언제나 산바람이 등골 춥게 불었고 출입구를 나가면 왼쪽에 커다란 놀이터가 있었다. 그곳은 마치 우리의 아지트처럼 누나가, 그리고 누나의 친구들이 그네 따위를 타고 자리를 차지하곤 했고 나는 대부분 혼자 놀이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때우며 지냈다.
그때, 오직 그때만큼은 나에게 친구라곤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막 이사를 간 상태였고, 단지 내엔 같이 놀 만한 친구들이 살지 않았다 - 살았다고 해도 나와 어울릴 만한 아이들이 없었으리라.
나는 그때 축구에 한참 빠져 살았는데 단지 내에 축구부 형이 살았고 나는 그 형 눈에 들어 축구를 배우고, 하고, 그 재미에 흠뻑 젖었다. 곧잘 미니 게임 같은 것이 벌어졌고 아스팔트 위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모여 게임에 참여하곤 했다. 그 게임에서 나는 늘 우수한 편이었고 - 그렇게 기억한다 - 실력은 점점 늘어 어느 순간 슛돌이 비슷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축구부 형은 나를 아끼고 미래의 훌륭한 재목쯤으로 지목하고는 챙겨주었으나 유독 그런 나를 시기하고 못살게 구는 형도 있었다. 태균이란 이름을 가진 것으로 아는데, 그 형은 게임 전후로 나를 괴롭히고 때때로 여러 명을 이끌고 와서는 나 하나를 두고 놀리거나 위협을 가했다. 실제로 때린 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때리는 시늉을 하거나 욕설을 하고 머리통을 쥐어박는 정도는 심심찮게 했다.
실제로 몇 개월 동안 괴롭힘이 이어졌는데 나는 속으로 분을 삭이고 게임이 끝나면 텅 빈 놀이터 그네에 홀로 앉아 명상을 해야 했다. 그땐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꽤나 험난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만을 뚜렷하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수치심을 느꼈고 당황했으며 속이 상했다. 이것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부모는 이 부재를 채워 주어야 한다. 이해의 부재.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 분명한 언어로 제시해 주어야 한다.
어느 날, 어둠이 내려앉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밥을 먹는데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밥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거친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마도 긴 시간 동안 쌓인 울분이 그날 저녁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모양이다. 평소 내가 그 형 이야기를 몇 번 했었던 건지 저녁을 차리던 어머니가 대뜸 물었다.
또 그 녀석이야?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땐 그런 행위가 마치 누굴 콕 집어 일러바치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나이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아주 비겁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름을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집을 나서면서 다그쳤다.
몇 호야? 그 새끼 몇 호에 살아?
그렇게 해서 나의 성난 모친과 나는 그 형 집 앞에 서게 됐다. 몇 호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8층이었던 건 왜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거지? 아무튼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내린 뒤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말았다. 어머니는 성난 얼굴로 마구 벨을 울려댔다.
누구세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였다.
누구든 말든 빨리 문 열어!
어머니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당황했고, 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여자가 문을 열었다. 어머니 또래 나이로 보이는 여자는 처음엔 정중한 모습이었다가 이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다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태균이 나와!
어머니가 소리치자 여자 뒤로 태균 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여자를 밀친 뒤에 그 형의 얼굴 뺨을 사정없이 몇 대 후려갈겼다. 헉. 이게 아닌데.... 나는 그 순간에도 통쾌하다거나 속이 후련한 것이 아니라 그저 깜짝 놀랐고, 당황했을 뿐이다.
너 이 새끼, 한 번만 우리 정은이 괴롭히면 그땐 죽여 버릴 거야.
멱살을 쥔 어머니가 그 형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저는 안 괴롭혔는데요!
우리 애 그런 애 아니에요.
태균 씨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억울해했고 여자는 멍하니 서서 변호했다.
뭐가 그런 애가 아니야? 애 교육 똑바로 시켜, -- 야!
어머니가 욕설을 섞어 소리쳤다.
태균이 형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때 너무 어렸고, 거짓말이 무언지, 지금까지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정의 내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괴롭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괴롭힘과 어울림의 경계도 구분 짓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괴롭힘이 맞다. 그 형은 나 한 명을 콕 집어 무리를 이뤄 나를 괴롭힌 것이다.
그 뒤로는?
그 형은 내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아마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쪽 집안은 어머니를 폭력으로 고소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같으면. 그런데 그땐 모든 게 여전히 무질서했고 사람들은 어수룩했고, 분명한 것은 어머니가 내 일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두 딸애를 키우는 아빠가 된 나는 가끔 그 일을 떠올린다. 내 아이들도 매년 모양과 상황은 달라도 여러 폭력적 상황을 경험 중이다. 그때마다 나는 지혜롭고 정의롭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내 아이를 보호하고 또 상대 아이의 삶 또한 바로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찾으려고 말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집으로 찾아가 뺨을 때리지는 않는다. 지금은 1980년이 아니라 2023년이니까. 다만 당시 어머니의 행동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 한 조각을 명징하게 남겼다.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올바른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지표 같은 것이 되었다.
이제 내가 어머니를 보호해야 할 때가 되었으나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어떤 일을 겪으면 40여 년 전과 똑같이 하실 것만 같다.
내가 너무 속상해! 가슴이 아파!
종종 내가 회사 일로 힘들어하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어머니가 내 회사에 찾아와 빌런들 몇 명의 뺨을 후려갈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의 어머니라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