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도덕과 책임의 측면에서 자신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지표 같은 것이다
나의 소중한 절친
아빠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딸애들의 아빠로서 그 아이들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이는 모든 부모의 질문이리라.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다. 아이들은 금세 자라고, 성체로 커서 이제는 더 이상 부모의 손길이 필요 없을 때쯤이 되면 떠날 준비를 한다. 물론 집을 떠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떠나는 것이다.
밥 먹을 때도 아무 말이 없고 밥 다 먹으로 제 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쾅 닫아 버리는 걸!
나는 그런 하소연을 끝도 없이 들어왔다. 그런 집은 실제로 많다. 자식과 대화 한 마디를 나누지 못해 불행해하는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봐 왔다.
너도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조금만 더 지나 봐라. 너한테는 아마 말도 안 걸 걸?
'
이런 말도 벌써 수년째 듣는 중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다. 대꾸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내 자랑이 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보통은 관계에 대해서 무지하다.
구태여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보통사람보다는 아주 조금 더 안다. 나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우선 많은 것을 배웠고 체험했다. 나는 지금도 70이 넘은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낸다. 어머니와 나는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서로 귀찮게 혹은 성가시게 굴지 않으며 인간적으로 상대를 챙기고 보살피며 대화를 한다. 지금도 한두 주에 한 번은 드라이브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이는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작지 않은 휴식이자 사치다.
이런 어머니와의 관계는 오래된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나를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권위라곤 없이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내가 필요한 것은 내 나이의 눈높이에서 공감해 주며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채워 주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나는 말썽이라곤 거의 피우지 않았고, 문제를 만들지 않는 아이였다. 나는 음악과 미술, 영화, 책을 좋아했고 자전거 타기를 즐겼고 산책을 좋아했다. 말수가 적고 온순한 편인 데다 나 좋아하는 것을 거침없이 해 왔다. 그러한 나의 성정, 인성, 개성은 대체로 어머니의 보살핌과 허락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 겪었을 법한 일들, 즉 성적 스트레스, 압박, 규율 따위로부터 자유롭게 컸다. 그런 것이 없이도 나는 도덕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살았고, 아니 나아가 남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믿음과 사랑, 신뢰, 인정, 공감. 이런 것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친구는 Friend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문제를 상의하며 함께 걸어가는 Mento에 더 가깝다. 어린아이는 몸뚱이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아직 미완성 상태에 있다. 그들은 안내자가 필요하고 지도가 필요하며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그런 의미다.
내 아이들은 모든 문제를 시시콜콜 아빠인 내게 털어놓는다. 아주 작은 일부터 커다란 문제까지 범주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의 불안, 불평등, 정치, 또래 친구와의 관계, 공부, 남자친구 문제,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공정한 일, 선생이란 존재, 부모의 역할, 자신의 현재와 미래 등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일을 나는 딸애들과 공유 중이다. 그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나는 이런 상태를 만들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제 딸애는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 내게 정답을 구한다. 나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상황을 정의해 주고 선택권을 딸애들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이 분명히 딸애들에게 있음을 주지 시킨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단다. 그리고 우린 그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만 해. 너 역시 마찬가지란다.
내 딸애들은 그러한 원칙을 잘 숙지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나이가 먹는 만큼 아이들의 처신은 더 지혜롭고 현실적이며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보통 아빠와 대화를 나눈 아이들이 언어 능력이 잘 발달된다고 관련 학자들은 말한다. 이유는 남성인 아빠는 엄마와 달리 어른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아이들은 이러한 자극을 통해 언어의 광장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언어 능력이 유달리 뛰어나다. 나는 신생아 때부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고 틈만 나면 대화를 나눴다.
함께 밤 별을 바라보며 산책하면서, 매미를 잡으면서, 숲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끝도 없이 주고받았다. 그것이 내 교육이었다. 공부를 하라거나 단어를 암기하라 따위의 주문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화를 통해 논리와 개념 측면에서 성장하고 지적 능력이 확장된다.
큰 딸애는 지금 중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절친의 배신, 친구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판단과 대응, 학습에 대한 정의, 자기 미래를 펼쳐나가는 가장 올바른 태도 등에 대해 내게 수시로 묻곤 한다.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고 내 견해를 경청한다. 이는 즐거운 일이다. 딸애에게 믿음직한 지도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 아빠가 되려 내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네 아이들은 어려서 그렇지. 중학교만 가 봐.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벌써 달라지는 걸!
아니, 그 말은 틀렸다. 내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도 변한 것이 없다. 내 딸과 나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끈끈해졌고 더 돈독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딸애의 가장 소중한 절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