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자신을 인도하는 긴 여정이다
퇴사.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단어다. 나 역시 입사 10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 부쩍 퇴사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됐다. 다 돈 때문이지. 그래, 퇴사를 용기 있게 결단하지 못하는 것, 전부 돈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갈래로 이어져 있는 책임을 지고 있고 나 하나가 삐끗하는 순간 그 갈래들은 끊어지고 부서지고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니, 퇴사,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 관계. 일하면서 보니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람이 좋고, 사람 관계가 원만하면 일은 고되고 어려워도 견딜 만하리라. 좋은 사람, 믿음직한 사람,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나를 고양시키고 발전하게 하는 것도 드문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사람, 아주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 품위 있는 사람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반대로 너무 악하지 않은 사람, 교활하지는 않은 사람, 비겁하지는 않은 사람, 뒤에서 호박씨 까지는 않는 사람, 모함하지는 않는 사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언론사에 있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뉴스의 절반이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것도 줄이고 줄이니 그 정도지 조절하지 않으면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정부가 어떤 생각, 어떤 철학, 어떤 기조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언론사, 그것도 공영방송은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뉴스는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고 싶어 하는 대상 맨 앞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 법이다.
정치 이야기로 너무 빠지지 않겠다. 하자 한다면 끝도 없으니.
어쨌든 나는 회사에서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이유로 공적 아닌 공적이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에 제리맥과이어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예감했던 것 같다. 저거, 내 얘기가 될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볼 만한 내용을 가진 영화가 틀림없다. 옳은 선택을 하려는 자,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는 자, 도덕을 주장하는 자, 이런 자들은 집단과 무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그런 문제 따위에 사실 별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비판을 싫어한다. 아니, 증오한다. 소위 내부고발자들은 제 스스로 물러나는 편이 집단이 원하는 대의다.
경험해 보신 독자가 있다면 공감하리라. 내부고발자 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경우, 아주 드물다. 그는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집단에서 따돌림당하고 결국은 그 집단에서 쫓겨나게 된다.
퇴사를 꿈꾸는 것이 꼭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우선 내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늙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나는 새로운 땅에서 낯선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이들을 더 나은 공간에서 교육시키고 싶다. 글을 쓰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이것들을 실현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많지 않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이것들을 이루지 못한 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게 될 운명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조금은 답답하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 건지 모르겠다. 돈을 모아서 자유를 찾는 것. 나 자신이 돈을 좇는 유형은 아니나 이들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책이 잘 팔리고, 많은 독자가 내 책을 찾아 읽어 준다면 하고 늘 소망한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어렵고, 솔직히 글 쓰는 일, 만만하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품이 많이 든다. 한 권 쓰기를 마치면 체력을 회복하는 데 이제 제법 오랜 기간이 걸린다.
나는 마흔다섯쯤이 되면 내가 퇴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일곱이 된 지금, 나는 퇴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빚만 늘고 모아 놓은 돈도 없다. 퇴사?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나는 멍청한 건지, 유연한 건지 대단히 긍정적이다. 언제나 된다는 마음이 앞서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낙관주의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소년이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꿈꾸는 일들이 하나둘 착착 진행될 것만 같은 생각이 굳건하다. 내 마음, 전혀 꺾이지 않았다.
언제일지 모르나, 퇴사를 하게 되는 날, 두 팔을 번쩍 들어 소리칠 것 같다. 나, 퇴사했어! 그날이 서둘러 내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서 새 집에 들어가 아침을 맞고 싶다. 노트북을 켜고 새 소설을 시작하고 아이들 학교를 바래다주고 저녁엔 가족들과 산책하고 싶다. 1년에 두 번 정도는 낯선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하고 싶다. 유튜브를 통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강연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 꿈을 언제 이루게 될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바로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