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것이다
아내는 결혼 전 소박하고 수수한 여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화장기도 없었고 내 기억에 값싼 면바지에 단화를 신고, 사무직 여성들이 입곤 하는 흔하디 흔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여드름이 났고 머리는 단발이었다. 당시 아내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랬던 사람이 첫 번째 데이트 때 아내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굴은 짙게 화장을 했고 향수를 뿌렸으며 하이힐을 신었다. 그녀는 순수해 보였고 마치 어린 소녀 같았다.
당시 그녀는 20대 중반을 막 넘어서는 나이였고, 내 눈에 아름다웠다.
우린 1년쯤 만났고, 우여곡절 끝에 혼인서약에 맹세를 하고 결혼이란 걸 했다. 아내와 나 둘 모두 어린애들이었고 결혼이 얼마나 험난한 둘만의 여정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싸울 미래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데다 몇 번씩이나 이혼 문턱 앞까지 기웃거리게 될 것에 대해서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좋은 시절이었지.
자동차, 수성펜, 브리오니 셔츠, 슈트, 구두, 의자, 책....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고 남자인 만큼 사물에 관심이 많다. 자동차, 각종 펜, 책, 구두, 셔츠, 의자 등이 내 관심목록이었고 주말이면 아내는 나를 따라 쇼핑 혹은 아이쇼핑을 다녔다. 수수하고 검소하던 아내는 점점 내 성향에 물들기 시작해 어느덧 고가의 옷을 입고 이탈리아 구두를 신는 멋쟁이 여성이 되었다. 그렇게 17년 정도가 흘렀다.
어느 날, 내 아내는 미니멀리즘을 선언했다.
이제 소비는 줄일 거야. 가진 게 너무 많아. 더 이상 사는 건 지양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해야겠어. 아, 그리고 필요 없는 건 과감하게 버리거나 정리하거나 팔 거야.
선언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나는 거기 동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아내가 대단하다, 는 생각은 했다. 나는 미니멀리즘이 가져다주는 가벼움, 소박함에는 크게 공감하는 편이지만 나 자신이 그걸 실천할 정도로 검소하지도 욕망이 없지도 않다. 나는 물건에 관한 한 아마 죽는 그날까지 욕망 덩어리로 살지 모르겠다. 좀 더 말하자면, 물론 나도 계획은 있다. 나는 60 이전까지는 지금의 소비 패턴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작정이다. 물론 50이 넘으면 소비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그리고 쉰다섯이 넘으면 지금 소비의 5분의 1 정도로 줄일 생각이다.
지금 내 옷장에는 꽤나 많은 셔츠, 슈트, 바지, 코트 등이 걸려 있고 신발장에는 십수 가지 구두와 스니커즈가 있다. 나는 훌륭한 안락의자를 쓰고 있고 수천 권이 꽂혀 있는 서가와 고가의 책상이 있다. 아이맥과 선글라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물건들이 곧 내 생활이자 나 자신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 아내는 웬 미니멀리즘일까?
실제로 그녀는 미니멀리즘을 선언한 뒤로 쇼핑을 끊었다 - 아니, 몇 가지를 사긴 했는데 예전에 비한다면 10분의 1 수준이다. 그리고 매일 같이 물건들을 파는 중이다. 덕분에 집은 점점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옷장은 빈 공간이 늘어났다.
거의 매일 당근, 당근, 하는 소리가 울려대고 사람들이 집을 방문해 물건을 가져가고 있다. 그게 나에게도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
아내가 약속이 있는 날이면 내가 대신 당근 거래를 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거, 꽤나 성가신 일이다. 약속 시간이 바뀌거나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사람이 늦게 오거나 할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이렇게도 참을성이 없고 연약했나? 나는 물건을 건네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나 자신을 한심스럽게 쳐다본다.
아내는 술도 끊었고 - 아내는 맥주를 즐겨 마시던 여자다 - 커피도 사실상 끊었다. 이제 명상을 한다며 수시로 바닥에 누워서 이상한 설교 따위를 듣는가 하면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아이들도 여기 동참 중이다.
어쨌든 아내가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면 대환영이다. 무엇을 끊든, 명상에 빠지든 그건 아내가 자신을 찾는 여정이니까. 다만 그 영향이 나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지금의 라이프 패턴을 유지하길 원한다. 물론 집도 사고 싶고 (언젠가는) 훌륭하다 싶을 만한 노후를 원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간소해지고 필요한 것도 줄어든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이제 곧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아내와 둘만 남을 텐데 그렇게 되면 넷이 둘이 되어 사실상 우리 가족도 미니멀리즘이란 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넓은 아파트도 필요 없게 되고 차도 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내 아내가 조금 일찍 미니멀리즘을 시작했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더 거창하고 멋지게 살아 보련다. 어차피 줄어들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을 살고 싶다. 다만 내 아내의 미니멀리즘에는 반대할 의사가 없다. 그녀는 그녀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