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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25. 2023

요즘 대학생은 수강 신청도 엄마가 대신해 준다며?

대학이 왜 필요한가, 질문하라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꺼냈다.


요즘 대학생들은 수강 신청도 엄마들이 대신해 주더라.


자식이 명문대에 합격했는데 입학하자마자 학부모 단톡방이 만들어졌대. 그 말이 믿겨? 아니 대학이 무슨 유치원이야? 학부모 단톡방에서 이번 학기엔 무슨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느니 그런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하네.


말도 안 돼!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한민국이라면, 뭐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긴 군에 입대해도 마찬가지라는데 뭐. 할 말 다했지.


아내는 요즘 세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시대는 변하고 인간도 변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은 참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하나의 문화인 것을!


나는 이 모든 현상이 우리 사회 특유의 '성장 지체'의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적기가 있고 의무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적정한 상태로 크지 못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퇴화 내지는 퇴행이다. 어린아이가 성인으로 커 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부모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면 놀라움을 넘어 끔찍함을 느낄 때가 많다.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이다. 그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의 이웃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십수 년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한 번은 스타벅스 한 귀퉁이 자리에 모여 앉은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목소리들이 워낙 커서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고등학생 학부모들이었는데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인지를 앞두고 지난번 시험 문제 분석을 토대로 이번 고사 출제 예상 문제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 솔직히, 그 장면,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이런 풍경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호랑이나 사자는 새끼가 사냥하도록 때가 되면 손을 놔준다. 어미새는 새끼가 날 수 있도록 때가 되면 손을 놔준다. 이는 동물 세계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법칙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역시 100년 전만 해도 자식이 스물이 넘으면 출가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 문화권에서도 자립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어 왔다. 공자가 서른에 자립했다 해서 이립이란 말이 유래하지 않았는가? 서른에 자립하려면 어떻게 그 이전의 30년을 보내야 하겠는가? 스스로 깨닫고 부딪혀 보고 깨져 보고 넘어져 봐야 비로소 제 힘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립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립은 고사하고 50이 돼서야 아,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으면 아주 빠른 것이 아닌가? 이는 분명한 성장의 지체다. 몸뚱이만 어른일 뿐 정신과 영혼은 유아인 것이다.


집을 사 주고 혼수를 마련해 주느라 자산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기사를 흔히 본다. 왜들 그러지?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가 삶이란 냉혹한 세계를 맞이하고 준비하며 역경의 극복을 통해 성장하도록 손을 놔주어야 한다. 반대로 현명하지 못하다면, 계속해서 먹이를 물어다 주고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쌀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어떤 선택이 더 옳은가?


홀로 서는 것, 독립,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 명의 인간으로 온전한 책임을 행사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에 자신이 책임을 짊어짐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니체는 말했다.


내 아이 교육의 핵심 목표는 자기 운명의 포용, 그리고 개척이다. 이것을 실행하고 자기 운명이 명령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 그것이 내가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첫 번째, 그리고 마지막 이유이자 목표이다. 학원을 보낸다? 명문대에 진학시킨다? 집을 해 준다? 노! 아니, 내 사전에 그런 리스트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학습이 중요하지만 어떤 학습인가, 는 훨씬 더 중요하다. 아니,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덮어놓고 학습'이란 구호는 학습을 망치는 길이다. 어떻게를 생각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동시에 학습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체험, 감정, 관계, 성장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온전하게 결합될 때 인간은 비로소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보기에 따라서는, 세계는 냉혹하고 무섭고 잔인한 곳이다. 살아남고, 의지를 발현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을 내 아이가 뒤늦게 깨달아 좋은 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 아이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또 내 아이 주변의 모든 인간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내 아이가 친절하고 겸손하며 지능이 뛰어나고 성실하기까지 하다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 아이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또 이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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