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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26. 2023

다시 간다 해도, 이탈리아

누구나 소울 플레이스가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한 골목길에서, 아내.


왜 아침마다 트레비 분수로 혼자 가는 거야?


아내는 뾰로통한 투로 내게 물었다.


글세, 그냥 좋아서.


정말 그것뿐이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겠는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아니, 이 말은 틀렸다. 이는 사물과 자연에나 합당한 말이다. 인간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면 기개와 활력을 잃고 시들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그 점이 중요하다. 낯선 환경, 낯선 땅에 나 자신을 놓아두는 것. 낯선 환경, 낯선 체험은 인간을 약동시키고 변화시킨다. 비로소 뇌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새로움과 창조성, 동기가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낯선 장면을 필요로 한다. 여행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장소, 낯선 사람 앞에서 우린 낯선 자아를 마주 하게 되고 시간성을 뛰어 넘어 사물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어디로 가는가, 일 것이다.


올해 8월, 나는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갔다. 파리와 스위스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가 이탈리아였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단테, 미켈란젤로, 그리고 역사상 최고의 완벽한 인간상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았던 땅, 바로 이탈리아였다.


오늘이란 날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 단테


언론사에 있으면서 거의 매년 해외 출장을 갔다. 그것은 카메라를 들고 뉴스를 만들며 얻게 된 좋은 기회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 40대 초반까지도 그랬다. 물론 출장은 언제나 힘들다. 야간 비행기를 타야 하고 시차 적응도 해야 하며 무엇보다 업무량이 많아진다. 돈을 지불하고 떠난 만큼 많은 걸 가져와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파리의 골목길


개인적으로는, 파리를 가장 좋아한다. 늘 한 군데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파리를 콕 집어 말하곤 했다. 20세기 문화의 중심지이면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도시가 아닌가. 조지 오웰이란 필명으로 활동한 에릭 아서 블레어가 머문 도시고 빈센트 반 고흐가 거의 평생을 지내다시피 한 곳이기도 하다. 파리에 대해 잘 모른다면 파리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수많은 작가, 화가, 사상가들이 파리를 사랑했고 흠모하며 이 도시의 낭만과 자유에 젖어들었다.


이탈리아는 내가 파리 다음으로 흠모해 온 곳이다. 그런데 마흔일곱이 되도록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고 나는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올해, 드디어 기회가 왔다. 올해 가족 여행지로 로마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밀란과 베네치아를 거쳐 기차로 로마에 입성했다. 예술가와 학자들의 성지인 피렌체를 어떻게든 끼워 넣고 싶었는데 내 실수로 그만 피렌체는 건너뛸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어찌 얄궂은 운명인가?


베네치아 수변 카페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탈리아는 3개 도시를 방문하게 됐다. 유럽은 어떤 면에서 진화로부터 분리되어 정체되어 있는 도시가 많다. 그것은 선택과 의지로부터 빚어진 정체다. 즉 과거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한 것이다. 부수고 없애고 갈아엎는, 이른바 현대화 정책으로부터 떨어진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그것으로써 삶의 낭만과 의미를 찾으려 분투하는 곳들이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화려하고 현대적인 고층건물, 상가, 새로 낸 길 같은 것이라곤 없이 모든 것이 옛 모습 거의 그대로인 도시들. 왠지 우린 그러한 장소에서 푸근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로마는 그런 곳이다. 지은 지 천 년이 넘은 건축물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길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카페는 백 년도 넘은 곳이 여기저기 성업 중이다.


그중에서도 판테옹과 콜로세움은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하다 - 자세한 설명은 구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는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정신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기념비적이다. 비교적 최근에 건축된 트레비 분수도 훌륭하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혼자 트레비 분수까지 걸어갔다. 이른 아침 시각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분수의 물은 차고 청결하다.


삶을 관조하고자 하는 자,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자, 예술을 사랑하는 자, 이탈리아로 가야만 한다. 걷고 마시고 관찰하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는 곳. 더구나 아름다움에 관한 한 이탈리아를 따라갈 수 있는 도시는 없으리라 단언한다.


밀란에서 나는 셔츠에 덧입을 수 있는 조끼를 구입했다. 베네치아에서는 아내가 쓸 것으로 값싼 가죽 가방을 샀다. 득템이야,라고 외치면서 우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별히 베네치아는 드넓은 바다를 끼고 상점가가 밀집해 있는데 구경할 것들이 꽤나 많다. 귀금속 가게부터 의류, 신발 등을 구경할 만하다.


이탈리아 여행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무척 즐거웠다. 오래된 교회를 관람하려 서너 시간 줄을 서 있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당시엔 힘들었으나.


내 생애에서 꼭 한 번은 이탈리아에 살아 보고 싶다. 1년 정도 머물면서 이 나라를 더 알아가고 싶다. 기독교문명이 요체, 르네상스의 발원지, 문학과 건축의 요람. 나에게는 이곳에 살 이유가 많다. 이곳에 머물며 소설 한 권을 집필하고 싶다. 아마도 훌륭한 책이 나오리라 기대가 된다.


아침마다 유적지 근처를 산책하고 바닷가를 거닐며 어둑해진 골목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 언젠가는 어게인, 이탈리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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