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목표를 가진 이일수록 큰 저항이 따라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으실지 모르겠다.
나는 공영방송에서 18년째 근무 중인데 몇 년 전부터 나를 째려보고 위협하듯 노려보는 사람이 있다. 50대 남자인데, 나와 같은 직종에 그래도 사회적으로 기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무척 성가시고 괴로운 일이다. 언론사에 있다 보니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기 쉽고,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왔다. 그런데 정도가 지나치다. 혹시 정신질환이 있는 걸까? 나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마주치면, 마주칠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나를 향해 분노의 레이저를 발사하겠지. 왜 그러는 걸까?
몇 년 전 어느 장례식장에 내가 들어갔을 때, 상(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던 동료들이 나를 보고 우르르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내가 식장에 등장하자 자리를 뜬 것이다. 그 무리 중에 나를 째려보는 이도 있었는데 그는 신발을 신고 식장을 빠져나가면서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몇 년이 흐르도록 그 사내는 한결같이 나를 겁주듯 노려보고 내 눈을 빤히 째려보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제 오후, 그와 사무실 복도에서 맞닥뜨렸다. 복도가 충분히 넓은데도 그는 나와 부딪힐 요량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고, 지나가면서 어깨가 서로 부딪히고 말았다. 나는 그냥 내 자리에 와 앉아 있는데 그가 다가오더니 -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걸면서 - 말했다.
이봐, 부딪힐 것 같으면 안 부딪히려는 척이라도 해.
이게 무슨 말인가?
뭐라고요?
나는 화가 나 반문했다. 그는 대답 없이 자리를 떴다.
나보다 한참 선배이고, 그가 나에게 증오, 혹은 적의 비슷한 것을 가질 만한 사건이 있긴 했다. 때는 2017년, 나는 회사 게시판에 몇 명의 잘못된 사내 행태를 고발하는 글을 썼다. 신입사원들에게 지속적으로 특정 노조 가입을 강압적으로 종용한 것, 노조나 학교를 중심으로 인사를 해 온 것, 국회를 출입하면서 특정 정치인 몇 명을 지속적으로 뉴스 화면에 올린 것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 고발 글은 사내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글을 올린 후 몇 달 지나 해당 인사들이 줄줄이 보직에서 내려왔다.
이 일은 내가 그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씨앗이 되었다. 이른바 사내 윤리 강령 위반, 언론인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노골적 편중 인사 등을 만천하에 공개한 사건으로 인해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들에게 무슨 빚을 졌는가? 불이익을 받고 기회를 번번이 빼앗겼을 뿐 나는 그들에게 떡고물 하나 받은 것이 없다. 즉 받은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받은 것이라도 있으면 덜 억울하겠다.
사내는 벌써 몇 년째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이제 그만해.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아니면 한번 사내답게 한번 붙든 지,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는 참아 오고, 견뎌 오고, 모른 척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좀 많이 불편하다. 스토커에 시달리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생각한다.
그는 심각한 우울증 내지는 분노조절장애, 혹은 그밖에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줄 모르는 정신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곧 퇴사할 나이인데, 왜 나라는 사람을 표적 삼고, 증오하고, 쓸데없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걸까? 그렇게 나이 먹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고 덧없는 일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미워해야 할 만한 자를 미워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분노나 폭력성이란 인간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다. 이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만이 절대선이 아니다. 그것은 적절히 표현되고 해소되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하고, 무례한 타인을 향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아끼는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 자신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참을성이 바닥난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 조치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회사 생활이 불편하고 가끔은 울화가 치민다. 물론 그는 어린아이의 연약하고 철없는 성정을 지닌 성장이 지체된 인간일 뿐이므로 나는 그저 몸뚱이만 어른인 한 못된 어린아이에 대해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 정도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심각한 환자가 내 사무실에서 내 곁에 계속 존재하고 얼씬거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그는 선배라는 타이틀을 지녔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으면 더 어리석어지고 치기 어린 행동에 노출되며 사악한 본성이 더 노출된다. 그는 무리에 섞여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공영방송 (영상) 기자라는 직업에 맞게 사회와 집단, 지구의 문제를 탐구하고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데, 아마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리라. 나 하나를 증오하고, 못살게 구는 것이 그에게는 전부이고 우주일지 모르겠다. 참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