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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싸움, 가족을 지킨다는 것

by 김정은

“결혼은 부부가 반려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아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의 긴밀한 구조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버틀런드 러셀 '결혼과 도덕' 중





나는 러셀의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 그땐, 솔직히 중간중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경험상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나, 많이 달라졌다. 결혼 생활 17년차, 큰애가 중학교 1학년이니 그간 얼마나 많은 수양의 과정이 있었겠는가?


요즘 사람들, 이혼이 아주 흔하다. 주변에서, 직장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이혼한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큰 결정을 내렸겠는가? 그러나 러셀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좀 더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지 그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러나 이 말, 생각보다 실천이 쉽지 않다.


살다 보면, 부부 혹은 가족이란 작은 공동체, 지구에서 가장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집단은 엄청난 고난 앞에 서야만 한다. 인간이 둘, 셋, 넷이 되어 한 길을 간다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리라. 반드시 풍랑을 만나고 비바람을 만나도록 운명지어졌기 때문이다. 이 짧지 않은 항해에 만약 성공한다면, 그건 기적 같은 일이다.


남녀가 둘이 만나 한 집에서 한 이불 덮고 자는 것도 기적인데 거기에 아이가 하나 둘 생겨 셋 혹은 넷, 다섯이 되면 이건 말할 수 없는 기적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결혼,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본인이 그럴 만한 준비와 역량이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해. 견디고 버티고 행동해야만 할 의무가 몇곱절 늘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결혼,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나는 가끔 이런 조언을 한다.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어렵게 어렵게 결정하라는 뜻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결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통과 관습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숨겨져 있다. 모든 것이 악습이고 폐단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만나 가족을 이룬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임과 수양의 관점에서, 성장의 관점에서 결혼은 엄청난 시스템을 제공한다. 어린아이를 성인으로 성장시키고, 풋내기를 주체자, 리더로 변모시키는 것, 그것이 결혼이다. 그러므로 성숙하고자 하지 않는 자,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자, 결혼은 포기해도 좋다. 결혼이 성숙과 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이란 뜻이 아니다. 다만 이것은 고통과 책임에 대한 선택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다.


핵개인화 시대에, 이기주의 만연한 지금 같은 때, 결혼은 아마도 젊은이들에게 버거운 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잘 판단한 것이다. 결혼이란 긴 선을 넘으면 이제 애 티, 철부지 성정, 이기주의를 벗어던져야 하는 것, 맞다.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자기 생과 더불어 아이들의 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거, 극도의 자기수양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산을 잘만 넘으면 달콤한 보상이 주어지는데 이 기쁨이 보통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겠다.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 만큼, 타인으로부터 신뢰받는 것 만큼 인생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하는 힘은 드물다.


가족이란, 사랑과 신뢰가 한없이 샘솟는 우물이다. 지구상에 가족의 사랑, 가족의 신뢰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엔 엄청난 희생과 대가가 따르지만, 잘만 버텨낸다면 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육아란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을 넘어 한 명의 인격체를 완성시켜 나가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그것도 단순 참여자가 아니라 한 명의 리더가 되어서 말이다. 인류가 아빠라고 칭하는 존재가 되었다면, 독자들이여, 당신은 이미 리더다. 사랑받고 존중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가족 공동체로부터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맛을 지닌 열매, 가장 따뜻하고 값비싸고 - 아니, 돈 주고 살 수 없으니 이건 빼자 - 진귀한 것은 다름아닌 오직 내 가족만이 내게 줄 수 있다.


그래서, 아빠들은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게으르고 싶고, 나태하고 싶고, 책임을 회피하고만 싶은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지식과 교양을 겸비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훈육을 감당해낼 수 있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 수양이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정이란 울타리를 쥐고 버티는 것. 기둥과 지붕, 창문을 보수하고 폭풍우가 밀려와도 버틸 만한 집을 지키는 것.


아빠들이여, 포기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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