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서울대, 아주 특별한 상징을 지니는 기관이다. 서울대에 들어간 사람들, 물론 보통사람들은 아니리라. 최소한 초중고등학교 레벨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이들일 테고, 그만큼 성실성을 발휘한 이들이 분명하니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서울대에 합격한 친구들은 특별한 아이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학교에서 선생들로부터, 동급생들로부터 정말이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우선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이 그 녀석들 주변에 모여든다. 그리고 선생들도 다가간다.
몇 점이야?
정답이 뭔지를 그 친구들로부터 확인했고 또 과연 이번엔 몇 개를 틀렸는지 선생들이 묻곤 했다. 녀석들의 성적은 곧 학교의 성적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학교 수재가 맞은 점수는 주변 학교 수재의 최고 점수와 비교되곤 했으니까. 그게 마치 학교의 등수라도 되는 듯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 녀석들, 지금 사는 것은 그저그렇다. 중소기업 부장, 학습지 회사 직원, 게임회사원... . 그들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신기하면서 기특한 것은 오히려 학교 다닐 땐 별 볼 일 없었던 아이들, 성적이 그저그랬던 친구들 중에 꽤나 성공한 케이스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나는 가끔 모교를 찾는다. 강연을 가기도 하고, 선생님을 뵙기도 한다. 지난 가을에 나와 함께 모교 후배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 같이 간 친구는 육가공 사업가다. 이 친구, 대학도 중퇴하고 20대 초반에 사업에 뛰어들어 쉼도 없이 일해 오늘의 사업장을 일궜다. 지금은? 제법 성공한 사업가가 됐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뤘다.
서울대 나온 친구들 중엔 성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만한 애들이 없는 반면, 그렇지 않은 친구들, 오히려 공부 못 한다고 핀잔 듣던 애들, 놀기만 했던 애들, 장난꾸러기들, 문제아들 중에는 성공한 친구들이 제법 나왔다.
공부를 못 하자!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시대 어른들이여, 우리, 알 만큼 알고 볼 만큼 보지 않았는가? 단언컨대,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한 대학 수업 중 교수가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용기 안에 골프공을 먼저 채우고, 다음엔 자갈, 그리고 마지막엔 모래를 채웠다. 이 순서가 바뀌면 자갈이나 골프공은 넣을 수가 없으리라.
골프공 -> 자갈 -> 모래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채워져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우선 순위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무시하거나 지나쳐 버린 채 우린 아이들에게 너무 강압적으로 성적만을 밀어부치고 있지는 않은가?
* 사랑과 관심, 가족, 놀이, 관계, 체험, 자유가 먼저
다음은 학습, 배움, 성취
이 점을 말해야겠다. 학습은 흔히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특별히 20세 이후, 대학 레벨에서 무척 중요하다.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지능이다.(지능 다음은 성실성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너무 일찍 공부를 강요받는다. 우선 순위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어른들은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어른들,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너무 많은 걸 빼앗는다. 다그치고, 채찍을 휘두르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훼손시킨다. 자존감을 빼앗고 놀이와 자유를 빼앗는다. 인생에서 잃지 말아야 할 진정한 가치를 망각하도록 만든다. 독일엔 대학입학시험이 없고, 프랑스는 사실상 대학 서열이 없다. 북유럽 고등학생의 절반 이상은 아예 대학을 가지 않는다. 우린 이것들로부터 무엇을 참고해야 할까?
부모의 역할, 어른의 역할은 안내자다. 길을 먼저 걸어 온 만큼 지나 온 과정에서 얻고 체득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어른이란 작자들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마치 성적 안 좋으면 삶이 끝날 것처럼 잔뜩 겁을 주고,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강요, 억압한다. 그 자신들이 정작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체득하지 못한 탓이리라.
경쟁 사회, 각자도생 사회, 맞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삶엔 강제로 해야 할 영역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강제성을 무제한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강제성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훗날, 내 딸이 서울대를 못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대학 이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앎은, 지식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은 본질적으로 자신과 하는 게임이다. 스무 살이 넘으면 우리 아이들은 이 게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앎에 대한 여정은 끝나지 않으며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목표도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그릇에 모래를 잔뜩 집어넣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훗날, 모래로 꽉 찬 그릇에 골프공을 넣을 수 없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 즉 자존감, 자신에 대한 믿음, 세상에 대한 도전, 목표 같은 것들 말이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하며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