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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을 거부하는 내 아이, 내버려 둬야 할까?

by 김정은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면 으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였던 것이 어린 시절 내 모습이다.


1980년대, 어른의 권위가 높고 셌다. 부모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른들, 아주 커 보이고 센 존재들이었다. 학교 선생은 어린아이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뺨을 때리거나 몽둥이를 내리쳤고, 집에서도 부모는 대체로 엄했다.


그 시절의 문화가 좋은 것인지는 논외로 하자.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식의 상하관계, 억압적 관계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애들 요즘 문화, 요즘 어른들 많이 달라졌다. 학교 안에서, 가정 안에서 폭력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요즘 부모들, 아이들을 존중하고 인격체로 대우하려 노력하는 게 뚜렷이 눈에 띤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DALL·E 2023-11-10 07.40.52 - A heartfelt and expressive painting in the style of Vincent van Gogh that captures the innocence and wonder of a child. The artwork features a young c.png


내 아이들, 무척 해맑고 순수하다. 그런데 요 녀석들, 심부름을 안 한다. 이것 좀 사다 줄래? 싫은데. 귀찮은데. 그게 끝이야? 그게 끝이다. 미동도 없이 그냥 계속 이불을 덮은 채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나, 이런 아이들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마, 이것이 요즘 가정의 대체적인 풍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주 가끔은 옛날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 어릴 땐, 부모 심부름이라면 좋든 싫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많이 변했구나.


가끔 아이의 책임 몫, 아이에게 할당하는 일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우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 책임 의식이 강하고 대인관계에 있어 적극적이며 성실하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나는 그래서 가끔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설거지도 부탁한다. 내 아이들, 매번은 아니지만 아빠가 주문한 걸 꾸역꾸역 해낼 때도 있다.


큰딸애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할 일이 무척 많아졌다. 주 4일을 학원에 가고 그곳에서 서너 시간씩 공부한 뒤에 8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온다. 아침 7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걸 감안하면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 시절엔 학원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도 드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는 것, 사실이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쯤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 아주 크게 잘못됐다. 아이들은 놀이와 여가 시간,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 형성 등의 기회가 필요하다.


독자들을 위해 내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나는 주말을 최대한 이용한다. 우선 평일엔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이외에는 아예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핸드폰을 보든,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둔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율성은 아이들의 주체성, 자기 발견,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심부름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심부름은 시킬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심부름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키는 것을 하는 것, 강제성이 있는 영역, 억지로 해야 하는 분야란 언제나 그 양이 일정 선 이상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강제와 자율 간의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이 아빠 심부름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 정도는 받아들인다. 이 아이들, 학교나 학원에서 이미 충분히 지쳐 있지 않은가? 그러니 부모가 이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은 자유와 자율, 놀이와 여가다.


우리 아이들에게 집만큼은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주면 어떨까? 푹 쉬고, 어린 아이의 쾌활한 영혼으로 돌아와 뛰어놀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런 공간은 현대사회에서 부모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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