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반론을 일으킬 거란 것, 안다. 이건 취향의 문제다, 맞다. 옷을 잘 입는 것과 인성, 품위, 지성, 어쩌면 무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들여다보면 대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인류에게 업적을 남기고 간 이들, 대부분 옷을 잘 입는 자, 소위 패셔니스타였다. 아주 뛰어난 패션 감각의 소유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단정하고 맵시 있게 입으려고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름을 대자면 끝을 맺을 수가 없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실제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실물을 찾아보려 한 적이 있다 - 아마 대학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그들 모두 옷을 잘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옷이 중요할까?
"오늘은 당신의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유일한 날이다. 이 유일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념해야 한다. 오늘이 당신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기념일인 것처럼 멋지게 차려 입어라. 당신의 인생을 우발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보람되고 가치있는 경험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면 당신 역시 의식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깨진 유리창 이론 Broken Windows Theory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했다간 나중엔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1982년 3월에 월간 아틀란틱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된장녀, 명품족 같이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을 저속하게 이르는 단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단어는 왠지 쾌감을 준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런 사람들, 주변에 꽤나 많으니까. 의지와 성실성, 근면함을 갖고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외면은 아름다운 내면만큼이나 우아하고 돋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기 주변을 정돈하고 망가진 것을 보수하며 비뚫어진 것을 바로잡는다.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혼란과 무질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된장녀 혹은 명품족의 패션은 단순히 도파민 분출의 쾌감을 자극시킬 뿐이다. 이는 질병에 가까운 행위이다. 이들에게는 삶을 바로잡으려는 굳건한 의지가 결핍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을 함부로 낭비하는 과소비 중독자들일 수 있다. (물론 나는 그것마저도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아니니 뭐라 할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마지막날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을 하루하루 살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바로 오늘이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날인 것처럼 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어쩌면 나에게 가장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매일매일, 내 인생의 유일한 날, 최고의 하루, 가장 성실하고 근면하게 노력한 시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멋지게 차려입으시라. 상황이 허락한다면, 가장 훌륭한 옷차림으로 나가라. 오늘이 마치 내 생애 최고의 기념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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