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쯤 둘째 애가 일어났다. 나는 아이를 불러 물었다.
어제 언니가 카톡에 쓴 거, 읽었어?
어떤 거?
죽어, 라고 썼잖아.
언니, 원래 그래. 죽고 싶어? 뭐 그런 말 자주 하는데.
너도 그냥 장난 정도로 받아들이니?
응.
둘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중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알았어, 그럼 됐어. 하고 나는 둘째를 방에서 내보냈다. 이거 일이 좀 싱거워지는 걸? 솔직히, 김이 샜다.
아내가 걱정이 돼서 오사카에서 아침부터 전화한 것처럼, 나도 일어나자마자 이 카톡을 보고 너무 놀랐다. 죽어. 이런 말은, 더구나 자매 간에 이런 말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는 아무것도 아니라니, 이 녀석들 도대체 어느 세계를 살고 있는 거지?
내가 사랑하는 첫째 애를 불러다 크게 야단칠 각오로 있었는데, 둘째 애 말에 어깨 힘이 빠졌다. 생각보다 별 일 아니겠는 걸? 아내는 나더러 제대로 혼내주라고 말했는데, 그럴 일은 아닐 것 같다.
11시쯤 큰애가 잠에서 깼고 우리 셋(아내 빼고 나, 큰애, 둘째)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평소처럼, 평화롭게, 주말 아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낮잠을 쿨쿨 잤다. 작은애가 울고 불고 했으면 첫째가 일어나자마자 사태를 해결했을 텐데 벌써 상황은 힘이 빠진 상태였다.
오후 2시쯤 큰애를 방으로 불렀다.
아가, 오늘 아침에 아빠가 카톡 봤는데 동생한테 죽어, 라고 쓴 건 무슨 의미지?
장난인데?
너네, 장난으로 그런 말 쓰니?
응.
큰애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엄마랑 아빠랑 오늘 아침에 네가 쓴 거 보고 너무 놀랐어.
이렇게 말하고,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큰애는 '아빠가 왜 그러지?' 하는 표정이다. 나는 서둘러 결론을 지었다.
아무리 뜻이 없는 말이라고 해도 동생한테 그런 말 쓰는 거 아니야. 앞으로는 절대로 죽어, 같은 말은 사용하지 마. 그럴 수 있니?
알았어.
그래, 나가 봐.
아이들에게 한없이 여유롭고 친근한 아빠지만 잘못과 규율에 있어서 나는 엄한 아버지다. 아이들은 아빠의 두 얼굴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자랑은 아닌데, 나, 이 부분에 있어 조금 도가 텄다. 뭐, 대단한 능력까지는 아닌데 모든 부모에겐 이러한 두 얼굴을 때에 따라 번갈아 내보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십수 년을 아빠와 함께 지내면서 아빠의 이 두 얼굴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사회 생활을 하며 헷갈리는 일이 있거나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인지 궁금하거나 정답을 알고 싶을 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근엄한 얼굴의 아버지를 찾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제시해 주거나 정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아이들은 내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아빠의 말에 수긍하거나 생각해 볼 만한 논제가 던져졌다는 의미다.
특별한 때를 제외한다면, 나는 늘 친근한 얼굴의 친구 같은 아빠다.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고 웃는다.
부모는 아이의 친구이자 동시에 안내자여야 한다. 누구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근엄한 얼굴과 친근한 얼굴, 이 두 모습이, 양면성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근엄하기만 하면 아이와 멀어지고 친근하기만 아면 아이가 배울 점이 사라진다. 부모는 예리한 감각으로 이 두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몇 가지 팁이 있다. 규율을 제시할 땐 너무 길게, 장황하게 해선 곤란하다. 짧고 굵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는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매서운 투로, 아이의 두 눈을 바라보고 정확하게 어른의 언어로 일러주어야 한다. 이럴 땐 세상 가장 엄한 선생의 얼굴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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