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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by 김정은

어린 시절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농담을 하면서 식사를 하던 저녁 시간, 사탕절과 희생절 때의 점심 식사, 나이를 먹을수록 매번 "이제 내년에는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갔던 신년 식사, 그리고 식사 후 함께 했던 빙고 게임을 아주 좋아했다. 이 대가족의 식사, 농담, 삼촌이 라크 혹은 보드카, 할머니도 약간 마신 맥주의 술기운에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은 내게 한편으로 액자 밖에 있는 삶이 더 즐거운 것이라고 느끼게끔 해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이라는 것이 가족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신뢰감, 농담, 편안함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한편으로는 모두 함께 웃고 즐기고 오랜 시간에 걸쳐 명절 음식을 먹는 친척들이, 가끔 불타오르는 재산 싸움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행동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30p



DALL·E 2023-11-13 09.24.00 - A warm and inviting 19th-century style painting showcasing a family dinner scene. The setting is a homey interior with the charm of the Victorian era,.png 가족과의 따뜻한 식사



1. 탐색하는 아이를 방해하지 마라


내 아이는 세상을 탐색한다. 유아기 아이가 모든 사물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은 나름대로 세상을 탐색하는 인간의 고유한 방식이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훑어 보고 들어 보고 던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탐색의 일환이다.


아이가 크든 작든 특정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되고 또래 친구가 생기고 집단의 일원이 되며 자기 몸을 완전하게 통제할 줄 알게 되면 그때부터 탐색 방식은 크게 발달해서 다양한 활동 양상을 보일 것이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관계와 놀이 속에서 발견된다. 아이는 활발한 태도로 다양하고 많은 관계를 맺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놀이를 한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발달 단계이다. 동시에 부모들이 가장 악마화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 친구들이랑 놀 때니?
대체 그런 게 네 공부에 무슨 도움이 돼?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부모, 아이의 발달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지금 내 아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는 어른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평범한 부모는 단지 공부를 권장할 뿐이지만 훌륭한 부모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이끈다. 아이의 탐색은 그 아이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친구를 사귀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호기심을 갖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성장의 마법이 숨어 있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아이는 세상을 탐색할 길이 없다. 탐색과 모험이 결여된 아이는 언젠가 반드시 길을 잃게 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문득 나는 누군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빠지는 이유는 성장기에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탐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2. 훌륭한 인간은 유년기의 탐색과 체험으로 만들어진다


열두어 살이었을 때, 나는 집에서 실험실을 꾸몄다. 커다란 포장용 나무 상자 안에 둥지를 튼 것이다. 실험실에는 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다 늘 감자튀김을 만들어 먹었다. 실험실에는 축전기도 있었고, 램프 뱅크도 있었다. 램프 뱅크를 만들기 위해 싸구려 잡화상에서 소캣을 몇 개 사서 나무벽에 박았고, 이것을 다시 전화선으로 연결했다. 나는 전구를 직렬 또는 병렬로 연결하면 전압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하루는 포드 코일의 스파크로 종이에 구멍을 뚫는 장난을 치다 종이에 불이 붙고 말았다. 불꽃 때문에 손가락이 너무 뜨거워서 종이를 놓쳤고 불 붙은 종이는 신문지가 가득 든 금속 쓰레기통 속으로 떨어졌다. 알다시피 신문지는 불이 잘 붙는다. 방 안에서 이 불은 상당히 커 보였다. 거실에서 카드 놀이를 하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문을 닫았고, 근처에 있던 잡지로 쓰레기통을 덮어서 불을 껐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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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파인만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생각만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라 불렸다. 라디오 고치기에 빠져 어린 시절을 보낸 데다 그 실력으로 동네 라디오란 라디오는 죄다 고치고 다녀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가 하면 면 애플로 20세기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집 좁은 차고 안에서 음울한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서니베일의 칩 차고는 먼 훗날 위대한 인간 스티브 잡스를 만들어냈다. 만약 그러한 체험이 없었다면 인류는 위대한 발명가이자 천재인 스티브잡스를 만날 수 없었으리라.


20세가 되기 이전까지 모든 활동과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뇌에 축적되고 강렬한 이미지들 위주로 머릿속에 각인, 저장된다. 많은 추억을 가진 인간이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추억이란, 유년기의 값진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추억의 관점에서 보면, 스무 살 이전까지 모든 과정은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하고 더 강렬하고 더 오래 남는 추억을 쌓는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시보다 시골, 농어촌 등이 내 아이 교육에 훨씬 나은 조건인 이유는 추억의 측면 때문이다. 우선 자연을 지근거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자연과 하나 되는 어린 시절)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의 이점을 누리게 될 것이다. 확실히 시간성으로 볼 때, 자연과 도시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게 흘러간다. 도시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으로부터 인간을 격리시킨다. 도시는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하다. 도시에서의 활동은 밤에도 지속된다. 하루 중 해와 달, 흙과 나무, 동식물으르 체험하고 낮과 밤의 경계를 인식할 만한 공간으로서 도시는 적합하지 않다. 도시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인공의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하게 격리되고 가둬지며 제한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DALL·E 2023-11-13 09.25.53 - A painting in the style of the 17th century, featuring a family portrait with a mother, a father, and two sisters. The parents are seated, exuding a s.png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우리 아이들


지금 우리 아이들, 탐색과 모험할 기회가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우리 교육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쏟아붓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체험과 모험이 가능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 시간이 없다. 부모들은 이러한 현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이들의 추억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추억이 없는 인간, 뿌리가 없는 식물과 다를 바 없다. 스무 살이 넘어 한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 바탕, 뿌리가 필요하다. 자신이 성장한 시절에 만들어진 추억이 없이 인간은 자신감 있게, 목표를 갖고 나아갈 수 없다.



DALL·E 2023-11-13 11.14.00 - An evocative and nostalgic painting illustrating the theme of memories. The scene is a collage of overlapping images, like a tapestry woven from past .png



추억 결핍의 시대. 이 문화는 도시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도시는 추억도 가족도 빼앗아간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멀다. 가족이 있지만 가족 간의 친밀한 관계, 친밀성, 특별한 인연, 오래 기억될 만한 체험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 아이는 가족이 아니라 그저 개인으로 존재할 확률이 높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넓은 광장에서도 도시 아이는 끈끈한 관계에 의해 연결된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떨어지고 분리된 채 살아가는 개인이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가 추억을 쌓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과 공부만을 강요받는 삶의 조건은 아이가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탐색할 기회를 빼앗는다. 도시의 아이들은 추억이 결핍된 채로 성인이 될 운명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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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아름다운 에세이다.(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인간이 써 낸 가장 아름다운 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이스탄불에 대한 감상을 사실적이고 꾸밈없이 풀어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태어나고 성장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개인사를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변천사와 함께 담담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예스24, '이스탄불' 책소개 중)


'이스탄불'을 나는 30대에 읽었다. 이 책에는 파묵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느낀 불안감, 가족 갈등, 첫사랑 등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도 아름답게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 볼 것은 그가 건축학과를 중퇴하고 스물세 살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배경에 이스탄불이란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파묵에게 이스탄불이란 유년기의 모든 것이고 추억과 모험이 스며들어 있는 그의 근본, 뿌리, 장소인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장소가 있는지 의문이다.



3. 내 아이의 모험, 내 아이의 탐색은 어떠한가?


도시에 산다는 것,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다. 특별히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장소이자 지옥 같은 곳이 서울, 대한민국이다. 부모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교육을 위해 서울을, 그것도 강남이나 목동으로 이주를 한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가까이 보면, 그것이 옳은 선택일지 몰라도 멀리 보면 결코 올바른 현상일 수 없다. 내 아이의 유년기, 자연과 추억, 모험으로 채워져야 한다. 고만고만한 모양의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지금 그대로 가도 문제없을 것이다. 대학으로 서열을 나누고, 흔히 말하는 대기업 취업 혹은 판검사 같은 직업 따위가 교육의 목표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자신감과 목표의식을 갖고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개척하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인간으로 내 아이를 기르고 싶은 부모라면 지금 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해야 한다.



DALL·E 2023-11-13 11.13.56 - An evocative and nostalgic painting illustrating the theme of memories. The scene is a collage of overlapping images, like a tapestry woven from past .png



추억과 모험은 유년기 아이에게 없어도 좋은 것일까? 아니, 내 아이, 추억과 모험 없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때 자신이 겪은 경험,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 머릿속에 남아 있는 따뜻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도전하며 부딪힐 수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무기인 것이다.


당장 내 아이가 추억을 만들어가도록 도와라. 스스로 세상을 탐색하고 놀이를 하고 관계를 맺고 좋은 이미지를 쌓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더 나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 좁은 교실에서 유년기를 낭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서는 어떤 모험도 어떤 체험도 이뤄지지 않는다. 추억이 없이는 인간은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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