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by 김정은

1. 겨울을 사랑할 수 있는 조건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이 말, 위험하다. 한때 나는 겨울이 싫었으니까. 싫었다는 것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스러웠다. 물론 겨울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걸 알았지만 추운 날씨에 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그 날씨를 극복해야만 하는 조건이 견디기 힘들었다.


겨울, 지금도 어떤 사람들, 어떤 계층,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나, 조금은 겪어봐서 잘 안다.


DALL·E 2023-11-13 14.01.22 - A serene 19th-century style painting depicting a winter forest. Tall trees heavy with snow stand silently, their branches frosted white against a soft.png

지금, 내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는 다른 조건에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이 내 차로 출퇴근하고, 밖에서 추위를 견디며 일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감사한 일이지만, 계층도 조금 위로 올라왔다.


이런 생각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 여전히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고, 나아가 이 문제가 해소될 가망이 적어 보인다. 겨울나기가 힘겨운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이야기다. 택배 일을 하는 사람, 야외 노동을 하는 사람, 난방이 열악한 집에 사는 사람,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그러니 내가 겨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진다.



2.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 나이들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뇌가 기억하는 이미지 컷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년이 될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더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2월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기 때문이리라. 올해는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남겼으며 어떤 추억이 생겼을까? 새해가 되면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잡지만 12월에 돌이켜 보면 제대로 이룬 것이란 초라하기 그지없다. 물론 매일 변함없이 노력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DALL·E 2023-11-13 14.07.41 - A pencil sketch of an elderly person's face, capturing the deep lines and wrinkles that tell the story of a long life. The drawing focuses on the deta.png


분명한 것은, 1년이란 시간 만큼 늙었다는 점이리라. 아, 이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이다.


3. 반드시 해야 했지만 아직 하지 않은 것들


가족과의 따뜻한 저녁 식사, 딸과의 진지한 1시간 대화, 나 혼자만의 강원도 여행, 아내와 단 둘이 찾는 따뜻한 호텔방... . 우린 살면서 많은 걸 놓치고 산다. 흔히 사람들이 의미 혹은 가치라고 부르는 것들은 나 스스로 품을 들이지 않으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린 바쁘고, 시간은 잘 나지 않으니까.


DALL·E 2023-11-13 14.16.53 - A 15th-century style painting that captures a tender moment between a father and daughter in conversation. The father is depicted in period-appropriat.png


아직 한 달 이상이 남아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시간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난해하지만, 나는 그러한 관점에서 시간 바라보기가 꽤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1년의 시간이란 어쩌면 한 달 혹은 하루와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 반드시 하면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같은 것들의 중요성이 더 또렷이 드러날 수 있다.


삶이란 어쩌면 해야 할 것들의 연감, 하고 싶은 것의 앨범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살다 보면, 돈 때문에, 벌이 때문에 중요한 것들은 뒤로 미루게 되기 마련인데 그런 와중에라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겨울은 그러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하며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독려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아이는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