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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이란 죽음 이전에는 닿을 수 없는 장소

by 김정은

물론 나는 괜찮은 직장을 잡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8년 전 겨울, 나는 여의도 공원을 가로지르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합격한 것 같아, 엄마!


DALL·E 2023-11-13 15.30.55 - A charcoal drawing of a jubilant young person, caught in a moment of pure exultation. The subject's face is lifted upwards, mouth open in a cheer, eye.png


최종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미 합격을 예감했다. 그리고 확신에 차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며칠 후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 장밋빛일 것 같았다. 쉽게 말해 정착이란 걸 하게 된 줄 알았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고, 어디에다 이야기해도 그럴 듯한 이름의 직장. 그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 중 하나였다, 분명히.


나, 물론 감사하고 있다. 여전히 한 직장에서 18년째 근무 중이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잘리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이건 가장이라면, 벌어 먹여야 할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리라.


DALL·E 2023-11-13 15.39.55 - A 19th-century style painting depicting an office worker. The individual is dressed in period attire, perhaps a waistcoat and trousers for a man, or a.png


그런데 직장 생활, 해 보니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다. 내가 싫어할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힘든 일이긴 한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란 내 직장 생활을 한순간에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 이런 사람들을 달고 산다.


그래도 어찌하는가? 버텨야지. 나가서 할 일 있어? 당장 나가면, 할 일, 없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직장인의 처지다.


요즘 들어 동영상을 많이 본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보는 동영상의 80퍼센트는 퇴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고 있짜면, 우선 현재 상황에 감사하게 되고, 둘째 내 미래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셋째, 내가 마주 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DALL·E 2023-11-13 15.41.55 - A contemporary portrait of a retired gentleman, reflecting a 21st-century aesthetic. The gentleman is depicted in a relaxed and casual posture, embody.png



꿈 꾸는 안정되고 아름다운 노년, 자, 그런 것 없다. 평생직장, 옛 말이 됐다. 평균 은퇴 연령은 50세 전후지만 그보다 빨리 퇴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대사회, 더 이상 정착이란 단어를 소유할 수 없게 되었다.


돈을 가마니로 가진 사람이야 건물 하나 사서 임대료 받으며 평생 놀고 먹을 수 있겠으나 그런 사람, 어디 흔한가? 우린 대부분 직장이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든 보통인이다. 그러니 직장을 사수해야 하고, 퇴직하면 또 다시 직장을 찾아다녀야만 한다.


내 형편과 조건을 탓해 봐야 밥도 안 나오고 쌀도 안 나온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준비, 준비, 또 준비뿐이다. 능력과 쓸모를 단련하고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한다. 자신을 담금질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탔다면 어디론가 가기 위해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그것은 배를 탄 자의 운명이다.


DALL·E 2023-11-13 15.50.20 - A painting of a person rowing a small boat on the vast ocean. The individual is in mid-stroke, muscles tense as they pull the oars through the water. .png


쓸모가 있고 능력을 갖췄다면 정착하지 못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체력을 요하는 것, 젊음이 필요한 일은 해당 사항이 없다. 나이와 무관하게, 젊음과 무관하게 순수하게 능력과 쓸모를 인정받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엔, 글쓰기다. 나는 퇴직을 위해 한 것은 아니지만 스물다섯 시절에 이미 작가가 되려 준비하고 노력해 왔다. 그것이 이제 와, 이런 시대를 맞아 유용한 무기가 될지는 몰랐다.


우린 그 어디에도 편안히 정착할 수 없는 운명의 구직노마드다. 이를 엄연한 현실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라는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을 불편해 하는 인간 뇌, 우리 자신의 뇌와도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러려면 품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쨌거나 독자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일이 반드시 있으리라. 서점에 가서 책을 훑어 보고 강연을 듣고 걸으며 계속 생각하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아직 젊고, 여전히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제2의 일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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