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사람들을 본다. 이른바 퇴직자들이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직장에서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유능하고 인간성 좋고 그 선배, 아우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선배가 퇴직하고 나서 1년 뒤쯤엔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선배, 퇴직하고 나서 하릴없이 매일 산을 다녔는데 어느 날엔 자살 충동을 느껴 절벽 위에 한참 서 있었단다. 물론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충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자신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길을 가다 흔히 마주치는 사람들, 직장을 잃고 쓸쓸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는 이들, 어쩌면 그들은 한때 어느 장소에서 유능했던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명함에는 직책과 이름, 전화번호가 그럴 듯한 표기체로 인쇄돼 있었으리라. 사무실에서, 식당에서 그들은 자리 분위기를 주도하고 자신감이 넘쳤을 수도 있다. 우린 그런 사람들을 오늘도 어디에선가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만약 저 사람들이 명함을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주고받을 명함이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 직장에서, 서로 싸우고 증오하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세력 다툼하는 풍경을 본다. 그러나 긴 시간의 강 위에서 보면, 이것들,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일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 우선 나 뭐 하고 있다, 하는 이 말이 지닌 무게는 절대로 가볍지 않다.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자기 명함 하나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 지금 내가 속한 집단, 직장, 장소가 나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그것을 잃었을 때 가지게 될 상실감도 큰 것이다. 그 상실감의 무게에 대해 우린 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학자들은 현대 인간이 평생 가지게 될 직업의 숫자가 6에서 8가지 정도 될 것이라 예측한다. 중요한 것은 분야가 다를 것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현직 교사라면 은퇴 후 가지게 될 직업은 학교가 아닐 확률이 높다.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모두.
내가 아는 한, 자기 명함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한 이들이 너무 많다. 즉 현 직장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이는 이들 말이다. 승진과 평점, 평판, 인간관계 등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들, 내 직장에서 보면 거의 대부분이다. 이 사람들, 은퇴하면 어쩌려고 이럴까? 은퇴 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해서)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내 지갑 속에 몇 장씩 들어 있는 소중한 명함, 이것이 사라지게 될 날,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때 나는 과연 누구일까? 명함이 사라져도 단단한 알맹이처럼 존재하는 나라는 인간이 서 있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를 각성하게 만든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냉정한 인식이 없이는 제2, 제3의 명함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지금 현재의 명함을 나라는 자아와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내 명함은 곧 내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나, 한정되고 제한된 조건 속 나를 의미할 뿐이 아닌가? 명함 이면에 엄연히 실존하는 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그 사람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사람일지 모른다. 명함 없이 존재하는 나의 그림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그 상을 만들어나가야만 한다. 그 상 없이는 현재의 내 명함이란 그저 부질없는 착각을 일으키는 종이에 불과하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하며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독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