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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저마다 조금 운이 좋았거나 나빴을 뿐

by 김정은

로마신화 속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운명의 바퀴(Rota Fortunae/Wheel of Fortune)란 걸 가지고 있다. 그녀의 바퀴 테두리에 매달린 사람들은 변덕스러운 운명에 의해 신세가 바뀌는 이들, 혹은 인생의 절정에 달한 황금기와 완전한 몰락을 포함한 한 인간의 일대기를 묘사한 경우가 많다. 포르투나가 관장하는 운명은 정해지지 않은 채 불안정한 것이고 행운은 도망치기 쉽다.


DALL·E 2023-11-14 13.15.13 - An artistic representation of a man who has just captured fortune. He stands triumphantly, a broad, confident smile on his face, his eyes sparkling wi.png


그렇다, 나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두세 군데 언론사에 (신문사와 방송국) 시험을 쳤고, 마지막에 최종 면접에서 합격해 지금 일하는 곳에 들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은, 운이 좋았다는 것, 그것뿐이다. 내가 합격함으로써 어떤 이는 떨어졌는데 그들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실력이나 능력, 역량과 경험치 면에서 내가 그들보다 월등했다거나 우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다.


나보다 훨씬 먼저, 몇 년 일찍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던 한 후배는 결국 언론 고시를 포기했다. 그 녀석 때문에 나는 언론사 시험이란 걸 보게 됐는데 안내자였던 그 친구는 끝내 도전을 포기했고 그의 안내를 받아 시험을 친 내가 합격해 언론사에 다니고 있다. 그 후배는 지금 학원 선생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그 후배 결혼식에 찾아갔을 때 그는 어렵게 입을 뗐다.


DALL·E 2023-11-14 13.14.09 - A 15th-century style painting depicting a melancholic wedding scene. The setting is in a small, modestly decorated chapel, with only a few attendees p.png


몇 년 동안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형. 연락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 결혼식 날 이후에도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는다. 나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증권사, 은행, 대기업, 검판사, 공무원 같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특별히 잘난 것 특별한 재능 같은 것, 따지고 보면 없다. 토익이 몇 점, 학교가 어디, 재산이 얼마, 뛰어난 수학 실력, 사교력... 그런 걸 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 재주란 걸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공평하게 평가해 점수를 매기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좋은 직장,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것, 대체로는 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DALL·E 2023-11-14 13.19.01 - A majestic illustration of the Roman goddess Fortuna, depicted as a woman in a flowing, ethereal robe with ancient Roman style. She is standing on a c.png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


운이 다야? 물론 그렇지야 않으리라. 운도 실력이 바탕이 돼야 따른다는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말이다. 어느 한 가지가 당락을 좌우했다는 말 따위,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최선을 다하되 마지막에 가서는 운에 맡겨야 한다. 초라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이것은 인간의 운명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언제까지 내게 운이 따라줄까, 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18년 전 여의도에 최종면접을 보러 온 그날, 내가 가진 운의 상당 부분을 사용했다고 믿는다. 오늘 당장 얼마 만큼의 운이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과거 어느 날에 운이 따라주지 않은 이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도전은 누구에게나 여러 번 열려 있다. 그러니, 미래에 독자들께 운이 따라주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DALL·E 2023-11-14 13.16.36 - A poignant depiction of a young person enduring hardships in their youth. The scene shows them in a dimly lit, sparse room, symbolizing their challeng.png


사실, 행운이라면 노년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힘이 빠지고, 늙고, 돈은 없으니 그야말로 이때가 인생의 진정한 위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말년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새삼 기분좋은 이야기다. 우리의 말년, 행운이 절실하다.


퇴직자에게, 혹은 사직자에게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갈 수 있는 데라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 홀로 방황! 이것,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결말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젊은 시절 만큼이나, 한 발 더 노력해야만 한다. 갈망과 야망을 품고 움직이고 도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 도전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나의 20대,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나는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기죽지 않았고, 도전했고, 다시 일어섰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글을 썼다. 사치는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전부였다. 수중에 천 원짜리 한 장 없이 하루를 산 날이 허다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늘 밥을 사 주는 사람이 있었고 옷을 사 주는 이도 있었다.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시절, 나는 행복이란 걸 손에서 놓치지 않고 하루하루 보냈던 것 같다. 다만, 그 시절로 돌아가라, 하는 명령에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다시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어, 라고 나는 말하리라.


다시 말하지만 남은 삶에도,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동시에 무언가 손에 쥐고 하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운이란 녀석이 지나가다 얻어걸리지 않겠는가? 오늘 주어진 하루 중 과연 몇 시간을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가? 1시간? 혹은 3시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란 오늘 희생한 시간의 총합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 다 즐기면 내일 먹을 거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무거운 역기를 들고, 러닝을 하고, 한 줄이라도 글을 읽고 한 줄이라도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은 어떤 색깔일지 모를 내 미래를 위한 희생이다. 나만의 무기를 장착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다.


나는 매일 아침, 하루 중 매 순간 영감을 받으려 노력한다. 나를 독려하는 글을 읽고,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영감을 얻는 것은 오늘 희생하기에 큰 도움이 된다. 나 스스로 일어나는 습관이 없다면 단 1초도 희생할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인간 본성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브런치를 꾸준히 구독하고, 힘을 얻으시길 바란다. 나와 함께 많은 독자들이 오늘을 희생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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