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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의 7일, 밀라노 여행자

by 김정은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생 땍쥐베리


여행을 떠나라. 상황이 허락하는 한. 그렇다면 상황을 창조하라. 여행을 갈 수 있게 마음을 다잡아라.


평소,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 그렇다. 여행 가기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우선은 돈이 문제고, 다음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럭저럭 나, 여행을 많이 했다. 순간순간 시간을 내려 했고 빚이라도 내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해서 가족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걷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 물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고.


여행은 도전이자 과제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러니 숙제를 척척 해 나가는 마음으로, 도장을 하나씩 깨 부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생 몇 군데 갈 수 없으리라.



진부하긴 한데,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우선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움직여야 하고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그러려면 동기부여와 체험이 간절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행만한 것이 없다. 내 버킷리스트 안엔 '아예 내친 김에 긴 여행하기'가 담겨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나,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래서 고안한 게 한 도시에서 1년 살아보기다. 뉴욕,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런던, 시드니, 코펜하겐, 빈, 베를린, 파리... . 그런 꿈을 꾼다. 이뤄질지 안 이뤄질지 그건 신께 맡긴다.




2023년 여름, 8월, 우리 가족은 로마 신화의 땅, 이탈리아로 향했다.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 이탈리아였다. 커다란 트렁크 두 개, 두 딸과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기차에 올랐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우리, 많이 지쳐 있었다. 기차를 타려 아침부터 준비를 했고, 기차역까지 트렁크를 끌고 걸은 데다, 기차역에서 꽤 오래 기다렸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기차를 타고, 여정을 시작하는데 바깥 풍경, 생각보다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드넓은 초원이나 아름다운 목가 풍경을 기대했으나 그런 건 없었다. 산은 건조하고 삭막했고, 들판은 아름답기는커녕 그저그런, 흔히 봐 오던 일상 속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조금, 실망했다. 물론 그 실망에는 지칠 대로 지친 내 체력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몸이 지치면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한번 기차를 갈아타고, 첫 목적지인 밀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이 혼재된 고풍스러운 건축물인 밀라노 첸트랄레역 (중앙역)의 웅장한 위용에 놀랐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치형 천장과 벽화, 페가수스 동상 등으로 장식된 내부는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나는 피렌체를 가고 싶었지만 숙소 예약을 잘못 하는 바람에 가게 된 곳이 밀라노였다. 그런데, 우리 가족, 밀라노에 대만족했다. 그 만족에 밀라노 중앙역이 큰 기여를 했다.


호텔은 역 바로 앞에 있어 조명이 켜진 아름다운 역사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호텔 뷰에 신난 우리들은 호텔을 나와 계속 걸었다. 걷기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무작정 걷다가 배가 고프면 먹고 목이 마르면 마셨다. 다리가 아프면 길 아무데나 앉을 곳을 찾아 엉덩이를 붙였다. 내 아내는 계획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나 기획 여행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를 이해해 주어 우린 적당히 계획 대로 그리고 적당히 무계획으로 여행을 한다.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지만 그 출발은 프랑스 패션산업의 하청 생산이었다. 1960년대 이탈리아의 섬유산업 육성정책, 디자인 인프라 구축 등에 힘입에 현재의 디자인 클러스터가 완성된 것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아케이드는 유리로 된 스칼라 광장까지 200m나 이어져 있다


아내와 나, 이곳에서 당연히 쇼핑을 했다. 패션과 건축, 미의 도시인 만큼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물론 우선 좋은 물건을 샀다는 데 만족했고 아케이드도 볼 만했다. 이탈리아는 옛 도시 느낌이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어디를 가든, 현대적이야, 라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그리 높은 건물도 드문 데다 유적, 오래된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탈리아, 강력히 추천한다.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세비야 대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밀라노 대성당은 밀라노를 대표하는 유적지다





세네카는 '여행과 장소의 변화는우리 마음에 활력을 선사한다'고 말했고, 헤르만 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으며 간디는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일생을 살면서 과연 몇 번의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내 버킷리스트, 과연 실행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직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삶 자체가 여행이자 한 인간의 긴 이야기, 여정이긴 한데 낯선 곳에 날 놓아두는 경험은 특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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