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학생 1인당 학부모 부담금, 평균 862만원으로 나타났다. 일반고의 18.5배에 이른다. 부담액이 가장 많은 한 자사고의 경우 학부모 부담금이 한 해 3000만원을 넘는단다.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서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등록금과 교과서비가 무상이다. 자사고, 외고 등은 물론 예외다. 같은 기간 (한해) 부담금은 외고는 759만8000원, 국제고는 489만9000원. 반면 일반고의 경우 학생 1인당 학부모 부담금은 46만6000원.
통계청 자료 상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88만1000원이다. 연간 2257만2000원이란 이야긴데 특정 자사고의 경우 이들의 연간 소득을 다 모아도 아이를 보낼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큰딸의 경우 학원을 보내는데 한 달에 자그마치 60만원을 쓰고 있다. 엄청난 액수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다수 아이들이 이 정도 금액을 쓰고 (상당수 아이들은 학원비에만 100만원 이상을 쓴다고 한다) 있단다. 예전에 강남 고액 과외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10년 전쯤이다) 당시 과외 액수가 과목당 500만원, 1000만원이었다. 그런데도 과외를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게 당시 뉴스의 골자였다. 이런!
상황은 이러하다. 자,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큰일이다. 사회 갈등, 사회 문제를 야기시키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프랑스엔 대학 서열이 없다. 독일은 대입 시험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실상 교육 제도가 계급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은 교육이지만 사실상 계급 제도다.
돈으로 경쟁하자 하면, 우리 경쟁에서 필패다. 돈을 가진 자, 상위 3퍼센트 이내 부자들의 능력은 범접할 수 없다. 월 몇 천을 버는 고소득자의 능력을 어떻게 버텨내는가?
우리 아이, 돈으로 경쟁시키는 것은 옳은 전략이 아니다. 이 게임은 빈자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이 게임의 수혜자들이다.
부모와의 시간? 경험과 체험의 절대량? 그것도 빈자들이 절대적으로 밀린다. 부자들, 시간도 많다. 여행도 많이 다닌다. 반면 돈이 없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부모들, 자녀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이것도 필패다.
그럼 어떻게?
틈 날 때마다 사랑한다 아가, 를 외치자. 스킨십을 하자. 이건 내가 쓰는 전략이다. 사랑에서마저, 스킨십에서마저 고소득자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 모든 게 다 괜찮다, 네 존재만으로 넌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를 외치자. 자존감이다.
아이의 자존감, 부자들 자식이라고 높지 않다. 부자들,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외외로 많은 경우 자기 아이를 학대에 가깝게 다그친다. 그래서 소심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들로 만드는 경우, 흔하다. 재벌의 자녀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 이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사랑받고 자존감 높은 아이, 약간의 정성과 관심이면 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도 안 하고 공짜로 부모 역할, 그런 거 없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셋째, 시간을 농밀하게 써야 한다. 고소득자는 나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 수 있다. 그들이 주당 5시간을 아이와 보낸다고 가정하자. 나는 1시간을 아이들과 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5배 농밀하게 보내야 하지 않는가? 농밀하게? 어떻게? 아이 눈을 들여다보고 대화하자. 내가 말하는 것을 줄이고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자. 따뜻하게 포옹하자. 볼에 입술을 맞추자. 손을 잡아주자. 어깨를 두드려 주자. 그리고 괜찮다, 괜찮을 거야, 잘 될 거야, 라고 말해 주자.
나의 경험상 아이의 미래는 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아이의 미래는 아이가 개척해야만 하는 영역이다. 좋은 대학 입학은 현실적으로 돈으로 결정될지 몰라도, 성공적인 인생은 돈으로 결정할 수 없다. 사랑받은 아이, 자존감이 높은 아이, 신뢰받고 자란 아이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자기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 그러니, 아이 인생, 내가 다 책임진다는 부담을 버려야 한다. 전투력이 높은 아이, 실전 능력이 뛰어난 아이, 성장할 수 있는 아이로 길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 아이, 교육의 문제를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저 아이는 3시간씩 한다던데. 저 아이는 100점이라는데. 저 엄마는 100만원을 쓴다는데. 이런 비교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교하려면, 역사 속 위인과 비교하라. 장자크 루소는 10세 이후엔 사실상 고아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도리스 레싱은 15세 이후 아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2명은 상고 출신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뒷배경, 성장 과정을 들여다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공통점은 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얼마나 성적이 좋았는가? 그런 것, 그리 큰 변수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있고 생각에 있으며 자신과 타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비교에 있어, 부모의 역할은 어제의 아이와 오늘의 아이를 비교하는 것뿐이다.
내 생각에, 내 아이, 어제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것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신경써주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다. (미안하지만) 타인과 비교하고 성적으로 판단하는 부모, 최악의 부모다.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없다면, 이기는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 그것에 집중하자. 사랑과 신뢰, 자존감과 태도의 게임에서마저 진다면, 내 아이는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이긴다면 내 아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리라.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하며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독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