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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캠핑에서 아내를 만나다

by 김정은

내 아내, 요즘 더 예뻐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8년째 동거 중인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 나, 내 아내에게 잘못한 것이 많다. 워낙 주장이 강하고, 주체성 강한 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보니, 내 아내는 그런 나를 거의 100퍼센트 맞춰 주며 살아왔다. 그것, 모르면 바보지. 시간이 보태질수록 왜 그게 더 감사해지는지, 왜 나는 그 따위로 살았던 건지, 조금은 후회도 된다. 그래봐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앞으로나 잘해, 나는 나 자신에게 읊조린다.


내 아내, 요즘 짜증을 잘 낸다. 혼자 살고 싶어, 따위의 말도 자주 한다. 한번은 그 이야기 좀 그만해 줄 수 없겠니, 하고 정색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한없이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 내 아내에겐 별것 아닌 존재 아닌가. 그만큼 내 노력이 많이 부족했어, 한심해,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유튜브를 돌려 보다 혼자 사는 여자 이야기, 혼자 사는 남자 이야기를 가끔 흘끗거린다. 이거, 이상하게 재미난다. 외로워, 너무 힘들어,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사니 천국이 따로 없어, 하며 좋아죽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일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말이다. 물론 언젠가는 내가 혼자가 되든지, 내 아내가 혼자가 될 텐데,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만약 혼자 남겨지는 쪽이 나라면 나는 내 아내를 어떻게 추억할까. 후회가 산더미처럼 몰려들까? 못해준 것, 나만 챙기며 이기적으로 했던 행동, 관심없는 척 모르는 척하며 피했던 것 따위가 떠오르면서 혹시 울게 되지는 않을지.



DALL·E 2023-11-20 13.31.22 - A portrait of a young wife, looking lovingly towards the viewer with a gentle smile. She has long, flowing hair and is dressed in a casual yet elegant.png


두 딸래미를 키우다 보니, 요즘 느끼는 게 많다. 이 녀석들 점점 엄마 편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초기엔 솔직히 서운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하는 생각에.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 말고, 타인이 바라보는 나, 내 가족이 평가하고 판단하는 나라는 인간 말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이 아니라 두 딸래미가 말해주는, 묘사하는, 그리는 내 얼굴. 이거 이거, 아주 사납다.


아빠는 자기 중심적이고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잖아.


그렇니?


몰랐어?


반성을 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됐다. 이 녀석들 눈에까지 그런 모습이 보인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내 아내가 그간 나한테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군. 나한테 문제가 많았네. 깨달음, 각성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하, 이것밖에 안 됐군.


DALL·E 2023-11-20 13.35.46 - A winter camping scene in a snowy forest. The scene includes a tent set up on the snow-covered ground, a small campfire emitting a warm glow, and a co.png

지난 주, 친구 가족과 캠핑을 다녀왔다. 불멍을 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왜 그렇게 미안하고 안쓰러운지. 늘 날 보면 짜증부터 내는 내 아내가 밉지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내 곁은 지켜주고 있는 게 고마울 뿐. 잊을 만하면 또 사고를 치고 아내가 한숨짓게 만드는 사람, 그게 내가 아닌가?


겨울 밤, 춥고 가슴이 시린데 내 아내가 사랑스럽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을 텐데 이걸 어쩌지. 또 사고 치고 아내의 짜증을 듣고,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 나란 남자. 각성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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