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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소파 예찬론자

by 김정은


마하트마 간디는 생전에 회전 목재로 만든 손빈터, 즉 "회전 목재의 지팡이"를 가장 아꼈다. 이 지팡이는 그의 심볼이자 비폭력과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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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연구와 공부를 할 때 사용한 연필을 매우 아꼈다. 그는 항상 동일한 종류의 연필을 사용했고 이것이 그의 창의적인 사고를 도왔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자신의 책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의 몬티첼로 재산 중 일부를 서재에 투자했는데 그의 서재는 많은 책으로 가득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본파르트는 그의 코르시카 출신을 상징하는 코르시카 모자를 애지중지했다. 그는 100여 개가 넘는 모자를 소유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모자는 19개뿐이다.


책을 사랑하는 자, 의자를 구하러 다니리!


퇴직을 하고 난 뒤 자유인 신분이 되면, 흔히 말하는 프리랜서가 되면, 아니 무직자 혹은 백수가 되면 내게 어떤 물건이 남게 될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 남자치고는 유난히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 이건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나의 모습이다.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나를 그렇게 보니, 아마도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정하고 있다.


몇몇 사물에 애착을 갖는 것, 과하지 않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그건 그저 내 취향이고 자유의 영역이니까. 하하. 퇴직하게 되는 날, 내 주위엔 꽤나 많은 물건이 여전히 나를 지킬 것 같다. 우선은 몇 개의 펜이다. 나는 펜을 신중히 고르는 편이고 한번 쓴 펜은 간직한다. 비교적 고가의 물건이기도 하다. 몇 벌의 슈트와 구두, 아끼는 손목시계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딜 가든 늘 함께 다니던 동반물이니. 아, 그리고 안경. 안경도 중요하다. 그나마 내 신체 중 그 기능과 역량이 가장 월등하다고 내놓을 만한 게 바로 시력인데 그놈을 그런대로 웬만큼 유지시켜 주는 고마운 녀석이 바로 안경이다.


그리고 나, 소파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푹신한 등판과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헤드레스트, 모던한 디자인의 스틸 다리, 볼륨감이 살아숨쉬는 쿠션, 팔을 얹었을 때 안정감 있게 무게를 지탱해 주는 팔걸이, 아름다운 파스텔 컬러의 고급 면피까지.


처음 책을 읽을 땐 차를 타서도, 심지어 걸으면서도 책을 읽었다. 화장실에서 읽는 습관은 몹쓸 질병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 나, 지금은 절대 화장실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독자 여러분도 참고하시길). 자연스럽게 의자가, 그리고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은 나무로 된 것, 대패질이 잘 되어 표면이 부드러운 것, 넓은 것, 상판이 두껍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의자는 책상의자, 그리고 안락의자 두 개가 필요했다. 시간차가 있었지만 아내 호응 덕분에 둘 모두 장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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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좋은 의자를 구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서재에 있는 1인용 안락의자는 거의 15년째 사용 중이다. 이 의자,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다. 딸래미들이 내 서재에 번갈아가며 들어와서는 이 의자를 차지하고 누워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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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켜줄래?


왜, 내가 비켜야 하는데?


아빠, 지금 무척 피곤하거든?


최소 몇 마디가 오간 뒤에라야 겨우 의자 주인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이런.


몇 년 전엔 거실에도 1인용 안락 소파 한 개를 들여놓았다. 영화를 볼 때, 거실에 앉아 홀로 조용히 거피를 마실 때, 음악을 듣거나 멍하니 있을 때 쓸 요량으로 아내를 졸라 겨우 구입한 고가의 의자다. 그런데, 이 녀석은 사고 나서 조금 마음에 안 든다. 생각 만큼 착 감기는 맛이 없고 뻣뻣하다. 마치 오라고 해도 잘 안 오고 밥투정만 하며 제 영역이 분명한 고양이 같다. 그래서 이놈은 나보다는 아이들, 그리고 내 아내가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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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있는 가족용 소파는 낡을 대로 낡아 더 이상 아무도 앉지 않는다, 그야말로 장식용이다. 이건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염가 소파인데 그럼 그렇지, 싼 게 비지떡이라고 산 지 얼마 안 돼 가죽이 찢어지고 벗겨져 흉물이 되고 말았다. 집에 오는 이마다 이 소파를 보고는 놀란다.


아니, 소파가 왜 이래?


그런 채로 근 2-3년이 흘렀다. 나도 나고, 아내도 아내인지라 우린 뭐든 한참을 지켜보고 처리를 미루는 편이다. 요즘, 나는 아내를 조르는 중이다. 새 소파를 사고 싶어, 라고. 맘에 드는 소파를 구입하려면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한지라 내 아내, 몇 년째 버티고 있다. 내년에, 그리고 또 내년에 하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엊그제 묘하게 아내가 합의를 해 줬다. 내년에는 사. 오, 진짜? 물론 전제 조건이 붙었다. 가정 예산상 지출은 안 되고 묘수를 짜 내야 한다는 것. 그래도 그게 어딘가? 사도 된다는 허락은 떨어졌으니 남은 건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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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물건, 그중에 의자는 빼놓을 수 없다. 집은 좁아도 상관없는데 의자는 꼭 필요하다. 나이들수록 허리 힘은 약해질 테고 근육량이 줄어들테니 의자, 무척 중요하다. 지금 쓰는 책상을 죽을 때까지 쓸 생각이다. 그러려고 신중하게 골랐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상판이 휘어지지 않는 한 끄떡없다. 지금 내 서재에 있는 안락의자, 가죽이 약간 벗겨지긴 했어도 쓸 만하다. 이 녀석도 죽음까지 동행할 예정이다.


내가 죽으면, 물론 이 녀석들도 네 죽은 육신과 같이 태워야 할지 모르겠다. 내 아내, 혹은 내 아이들이 잘 처리해 주겠지.


퇴직한 당신이 외롭지 않게 지금부터 몇 개의 사물에 애착을 가져 보시길 권한다. 이 취미, 제법 쓸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무소유주의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퇴직 전 행위와 습관, 노력을 그대로 이어가려면 반드시 이 녀석들의 동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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