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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파치노는 산책을 한다

by 김정은


건강한 사람은 보통 산책을 즐긴다. 산책을 즐기는 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스크린샷 2023-11-21 오전 9.40.36.png 산책하는 인간의 대명사, 칸트


산책 하면, 임마누엘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그야말로 산책의 원조다. 그는 ‘걸어다니는 시계’로 불렸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차 한 잔과 담배 한 개피와 함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오전에 강의를 한 뒤 오후 1시까지 글을 쓰고 오후 1~3시에 점심을 먹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30분 뒤에 한 시간 동안 강변을 산책했다. 그 뒤엔 친구를 만나 7시까지 대화를 즐겼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밤 10시면 잠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장 자크 루소는 아예 산책을 소재로 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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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현대인들 사이에 걷기가 열풍이다. 어떤 이는 이를 산책 열풍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산책이란 본래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위는 아니다. 물론 칸트가 산책을 즐긴 이유 중엔 편두통이 있긴 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산책은 그저 걷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는 행위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는 행위 그 자체가 산책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든가 '하루 만 보'라든가 하는 구호가 붙는 순간 이미 산책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진다.



스크린샷 2023-11-21 오전 9.23.39.png 연인과 산책 중인 숀 펜


개인적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의 산책 장면이 찍힌 사진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묘한 흥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벼운 조깅을 하고 있는 장면,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것, 카페에 들어가는 모습, 비행기를 타려 줄을 선 모습 같은 스냅 사진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사진들은 푸근하다. 정감이 가고 왠지 이 배우들, 가수, 연예인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 이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좋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헐렁한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스크린샷 2023-11-21 오전 9.35.05.png 운동 중인 제니퍼 로페즈


프라이버시란 문제가 있긴 한데 나는 대중연예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노출은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너, 사진 찍지 마, 이런 것은 조금 웃긴다. 그 감정, 사진 찍히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데 어쩌겠는가. 대중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고 사는 자,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언제 어디에서나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라면 더 애정이 생긴다.



스크린샷 2023-11-21 오전 9.34.05.png 키아누 리브스의 간식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평상시 모습, 본업이 아닌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은폐는 건강에도 좋지 않다. 꼭 대중 연예인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공기가 필요하고 맑은 공기 속에 산책을 해야 한다.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는 자연, 그리고 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크린샷 2023-11-21 오전 9.22.04.png 산책 중에 사람을 만나고는 춤을 추는 알 파치노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사회 연예인 가운데에는 너무 은둔하는 이들이 많다. 그거야 그들의 선택이자 자유인데 그것, 사실 건강하지는 못한 행위라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구나 일상이란 게 있고, 바깥 세상이 필요하다. 늘 일정하게 단장된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산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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