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둘째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오늘이 '록 페스티벌' 날이란다. 아내와 함께 . 가보니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예회 같은 것이었다. 1학년생부터 6학년생까지 차례 대로 무대에 올라 준비해 온 노래, 춤, 사물놀이 등의 공연을 펼쳐 보였다. 나, 재미없어서 그냥 눈 감고 있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 내가 보고 싶었던 것, 아이들의 아이다움이었다. 어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 그게 아이다움 아닌가? 뛰고 웃고 소리지르고 신나서 깔깔거리는 것. 초등학생이 하는 페스티벌이라는데 나, 도무지 이 아이다움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재미없어서 잠이 올 지경이었던 것이다.
큰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아이들이 다 이상해.
왜?
그냥 삶의 기쁨이 없는 것 같아. 이야기도 없고 말도 없어. 표정도 없어.
그렇구나. 심각하네. 왜 그럴까? 학원에 많이 다녀서 파김치가 된 걸까? (물론 나는 이유를 대충 안다. 내가 아이에게 물은 이유는 내 아이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아마, 그럴지도.
아이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큰애가 4학년이 되었을 땐 충격적인 말도 했었다.
아빠, 우리 반에 어떤 애가 있는데 걔의 꿈이 뭔지 알아?
뭔데?
언젠가 자기 손으로 죽는 거래.
뭐?
나, 완전히 당황했다.
이유가 뭔데?
모르겠어. 자기는 바라는 게 그거, 죽고 싶은 것뿐이래.
오늘날 부모라는 사람들, 참 좋겠다.
나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그 부모는 어떻게 애를 기르는 거지? 무슨 목적으로 애를 키우는 거지?
지금 행복하면 나중에 불행해진대.
딸래미들이 말한다.
그래? 무슨 그런 헛소리가 다 있니?
그치? 근데 지금은 무조건 공부만 해야 된대.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불행해진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거, 보장할 수 있대? 누가 그런 걸 장담할 수 있다니?
나는 내 딸래미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나, 다른 부모들보다 귀를 열어둔다. 학원 보내는 데 쓰는 돈의 양, 성적에 대한 관심, 더 공부하라고 아이를 다그치는 일, 공부 좀 해라 하고 닦달하는 것 따위, 나는 관심이 없다. 다만 아이와 나누는 깊은 대화, 아이를 포옹해 주고 용기를 주는 것, 삶의 의미가 뭔지 알려주는 일, 아이의 행복도, 자존감, 그런 점 그런 주제 그런 것들에 관해서는 어떤 엄마, 아빠보다 관심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 왔다고 자부한다.
내 딸래미들과 지금껏 (근 13-14년째다) 나눈 대화를 종합해 보면, 요즘 애들 그리 행복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자해를 하는 애가 있는가 하면 꿈이 자살이라니. 도대체 이 사회, 정상인가? 어른들이란 자, 참으로 무지하고 잔인하구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치의 서열 체계란 게 어른들에게 있기는 한가?
삶에는 우선 순위라는 게 있다. 고상하게 말하면 가치의 서열 체계다. 이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으실까 해서 말하는데 아주아주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쓰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뭐가 중요할까? 성적? 학원? 그거 하면 아이들이 성장할까?
학습, 공부, 중요하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잖아. 공부, 그거 왜 하는 건데? 명문대 가려고? 그럼 명문대는 왜 가는데? 돈 많이 벌려고? 돈은 왜 버는데? 행복하게 살려고? 그래, 맞아, 행복이잖아. 결국 마지막엔 그 단어가 있네, 행 - 복 - !!
그거, 행복 말이야, 지금 당장 주면 안 될까? 왜 우리 아이들이 그걸 나중에 가져야 하는데? 이유 좀 압시다. 나중이 되면 정말 행복이란 게 우리 아이들한테 오는 거 맞아? 내가 살아보니 정말 그게 진실이야?
아니, 그건 틀렸다. 행복도 연습해야 하고 습관이다. 미래? 미래란 아무도 장담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린 현재를 통해 미래 상황을 추론해 볼 수는 있다. 가령 매일 벽돌을 한 개씩 쌓아나가는 이가 있다면 1년 뒤엔 365개 높이 만큼 쌓을 수 있다는 것 같은. 오늘 행복하지 않은 애가 4000일 뒤에 대체 어떻게 갑자기 짠 하고 행복해지나? 명문대 교문을 넘으면 무슨 행복의 마법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미래의 강력한 토대이자 증거다. 왜 오늘을 무시하고 경시하는가? 왜 오늘 내 아이의 감정 상태, 행복도, 자존감을 들여다보지 않는가? 이는 오늘날 우리사회 부모들의 심각한 직무 유기이자 학대 행위다.
그런 록 페스티벌, 정말 끔찍하다
다시 가고 싶지 않다. 표정 없는, 영혼이 가출한 듯한, 잔뜩 우울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보여주자고 벌이는 꼭두각시 인형놀이, 보고 싶지 않다. 그건 현실을 가리는 가면이자 이 끔찍한 현실을 적나라에게 보여주는 리얼리즘이다.
일상이 페스티벌이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상이 놀이터고 숲이고 들판이자 광장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숨을 좀 쉬어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이는 어른뿐이다. 부모만이 그 공간을 제공해 줄 .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신 좀 차리면 안 될까?
내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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