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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의 즐거움에 대해

by 김정은

세차를 해 봤는가?


세차장에 가면 흔히 세차광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가득하다.


세차, 이것, 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걸 아는가?


안 해 보신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 시작해 보시길 추천한다. 나에게 세차는 글쓰기와 같은 행위이고 고독을 즐기는 일이며 하나의 취미이자 낙이다.


나는 캠핑,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서도 여행을 자주 간다. 갈 땐 좋은데 돌아오면? 차가 지저분해져 있다. 그럼? 세차를 해야지, 뭐.



DALL·E 2023-11-22 16.11.30 - A man on a solo camping trip by a lakeside. The scene is set in the evening with a serene lake reflecting the orange hues of the sunset. The man, of H.png



나는 세차를 한다. 한 10년 동안은 세차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냥 돈 주고 맡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차의 맛을 알게 됐다.


단순한 행위 속 행복


우선 몸을 쓰는 일은 즐겁다. 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일수록 힘들고 귀찮은 법인데, 그걸 해내면 묘한 성취감이 생기고 그 끝 언저리에 행복도 깃든다. 이런 경험, 많이 해 보셨으리라. 세차, 참 귀찮고 힘들다. 내 차는 특히 큰 SUV여서 닦자면 땀이 나고 시간이 한참 걸린다. 허리가 아프고 손목도 통증이 온다. 네 귀퉁이 다 닦으며 한 바퀴 돌면 어찌나 힘이 드는지, 허리 펴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며 큰 숨을 내쉬어야 한다. 그런데 닦고 물 뿌리고 또 닦고 구석구석 빤질빤질하게 하는 일이 참 즐겁다. 이거, 꽤나 몰입된다.


세차는 몰입이다.


그거, 아는가? 톨스토이는 몰입 예찬론자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레빈이란 인물은 풀베기 노동을 통해 몰입의 행복을 경험한다.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단순한 행위 속에서 인간은 감정이 정화되고 기묘한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말하고자 했으리라. 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런 문장 하나 읽고 가시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캬, 정말 멋진 말 아닌가? 인간이 쓴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첫 문장으로 꼽힐 정도다. 톨스토이, 천재다. 그런데 톨스토이가 말한 행복, 별것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상 속에서, 노동 속에서, 단순한 행위 속에서 우린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세차가 행복 찾기 방법 중 하나다.


돈, 좀 아껴 보자


둘째, 내가 직접 차를 닦으면 돈이 절약된다. 이것, 적립하자면 재미가 제법 쏠쏠한 일이다. 세차를 맡기면 보통 3-5만원 정도 줘야 한다. 내가 직접 하면? 만오천 원이면 된다. 절반 값 혹은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세차, 가능하다. 1년이 쌓이고 10년이 쌓이면 이 돈, 만만찮다.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


셋째, 시간을 의미있게 쓸 수 있다.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뭘 마땅히 할 만한 것은 없는데 시간은 남는다. 나는 그런 시간에 세차를 한다. 춥고 사람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새벽 시간에 나가서 혼자 세차 하는 일도 참 즐겁다. 하루 휴가를 내고 일부러 세차장에 갈 때도 있다. 그 시간 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아마 낚시나 혼자 골프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는 고독을 즐길 권리가 있지 않은가. 고독하지 않은 자,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자다.


인간 문제의 대부분은 혼자가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고 언젠가는 혼자 떠난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해도 결국 우린 고독감을 느낀다. 그것은 잠시 덧칠 되었을 뿐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다. 친애하는 당신이여, 한가한 날이 오면 혼자가 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 고독을 피하지 말고 그것과 맞서라.

- 쇼펜하우어


아마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한 세차를 계속 할 것 같다. 내가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동안 만큼은 내 차는 내가 닦으리라. 이 행복한 일을 언제까지고 지속하고 싶다. 또 알리고 싶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단순한 행위 속에 얼마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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