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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21. 2023

나를 인쇄하면 글이 된다

일단 무엇이 됐든 써라.


글 잘쓰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10대 혹은 20대라면, 오 그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 바로 글쓰기다. 30대, 40대 혹은 그 이상이라면? 마찬가지로 글쓰기, 해야 한다. 


나는 젊은이, 학생을 상대로 강연하기를 좋아한다. 불러주는 데가 있다면 장소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내가 직접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가는 것이 강연이다. 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글쓰기, 빠진 적이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그게 글쓰기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글쓰기를 중시해 온 문화적 배경이 있다. 대학입학에서 에세이 점수는 합격에 있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취업 시 포트폴리오 역시 마찬가지다. 논리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경험, 다양성 등은 글로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에 비하면 사실상 카피(Copy) 전쟁이다. 수업, 학습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표현이 전무하고 단순히 암기한 것을 복사하는 과정에 그친다. 수능시험이란 것도 거의 대부분 카피 능력 테스트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 문화 역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의 과거 제도, 사실상 에세이 시험이었다. 시, 문학, 윤리, 정치, 역사 등에 관한 글짓기가 바로 과거제도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대 대한민국의 학습, 문제가 많다. 지성의 핵심 요소라 할 만한 글과 말이 빠져 있으니 말이다.




아는 것을 쓰고 씀으로써 알게 된다


왜 글을 써야 하는가? 단언컨대 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적지 않으면 이 안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안다고 말하는 것, 사실 그것들은 모두 짐작에 가까운 것들일 뿐이다. 우리는 실제로 제대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안다고 착각한다. 착각은 자유이나 사실 그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제대로 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려면 써 보는 일밖에 없다. 어느 한 가지 문제, 대상, 사물, 주의 등에 대해 내가 안다고 말하려면 컴퓨터를 켜고 적어 보시라. 노트를 펴고 펜을 들고 써 보시라. 줄줄줄 쓸 수 있다면, 슥슥 적어내려갈 수 있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것, 맞다. 그러나 주저주저하고 머뭇머뭇거릴 뿐 첫 단어, 첫 문장부터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건 모르는 것이다. 적어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글 쓰기, 나를 인쇄하는 일이다. 일련의 문장을 적어놓고 인쇄 버튼을 누르면 내가 적은 대로 깨끗이 인쇄가 되듯 글 쓰기란 그런 것이다. 아는 만큼 적히고 내가 말할 수 있는 만큼만 인쇄된다. 그래서 글 쓰기, 아주 정직한 과정이다.


글과 말, 생각과 행동은 상호 영향을 미치며 성장한다


어린아이가 혹은 한 젊은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란 생각과 말, 읽기와 행동의 다른 형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각기 다른 행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말만 많거나 행동이 앞서거나 생각이 깊지 않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반대로, 이러한 행위들을 골고루 실천하고 연습하면 상호 영향을 미쳐 더 나은 생각, 말, 글이 나온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 자, 읽지 않는 자, 말만 하는 자, 행동이 앞서는 자, 이런 자들로 세상은 넘쳐난다. 편식이다.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인간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한 가지만 취하는 것은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발달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아이들, 받아적기만 있을 뿐 자기 표현이 결여되어 있는 것, 큰 문제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구분과 분류


그렇기 때문에 쓴다는 행위엔 의미가 있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내가 제대로 아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분류할 수 있다.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지성의 특징은 '모른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몰지성의 특징은 '뭐든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척척박사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몰지성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거의 맞다.


나는 수많은 척척박사들을 본다.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지, 그들이 모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저 들을 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들은 입은 열되 귀는 닫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인지와 인식


우리는 씀으로써, 어떤 대상을 분별할 수 있고 판단하여 알 수 있게 된다. 객관적 실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쓴다는 것은 인지 과정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다. 이분법적 사고, 예단이나 낙인 등과 같은 인지적 왜곡은 대부분 글을 쓰지 않을 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물론 글을 쓴다 해도 이러한 왜곡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검증과 판단, 수정 과정은 왜곡 가능성을 줄여준다.


자기 표현과 기록


상상력, 창조성, 창의성, 표현력 등은 글 쓰기를 통해 검증되고 훈련된다. 글 쓰기 행위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논리적 성장을 돕는다. 쓰지 않는다면 사실상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기에 사실상 지적 성장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다. 죽으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고 인간 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해서 읽어야 하고 써야 한다.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아 혹은 타인과의 소통


외로움은 어느 질병보다 인간을 아프게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 대면하며 성장한다. 말이 가장 기본적인 소통 창구라면, 글은 말과 달리 더 깊고 풍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같은 내용이라고 해도 글은 차원이 다른 효과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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